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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정상엽

기자명 구담 스님

잊혀져가는 칠 문화를 되살리다

▲ ‘休’, 나무판위에 옻칠, 75×75cm, 2013년.

최근 한 뉴스에서 백제 의자왕 시절 입었던 옻칠 갑옷 전시 소식을 들었다. 옻칠 갑옷은 당시 철갑옷에 비해 무게가 가벼운데다, 햇빛 아래에서 반짝이는 효과가 있어 군사의 위용을 높여주는데 효과적이었을 것이라고 전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옻은 수천 년 전부터 공예나 약용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오죽하면 색칠을 하거나 바를 때의 표현과 칠흑 같다는 말 또한 검은 빛의 옻칠에서 유래되어 전승되어 왔을까. 이런 사실을 이웃해서 현대 옻칠 회화 작가인 정상엽의 열정을 큰 틀의 문화적인 맥락으로 읽어낸다면, 동양다움의 표현 형식으로 옻칠이 이 시대의 간판 현대미술로 자리할 수 있으리라고 보여진다.

절집 차 덖는 모습 보는 듯
칠하고 말리는 작업의 반복
성찰 담긴 작품으로 선보여

필자가 속한 미술관에서 작년에 이어 올해도 현대 옻칠 회화 전시를 개최한다. 아마도 옻칠의 매력에 빠진 본인의 감상 탓도 있겠지만, 옻은 불교의 역사적 추이를 그대로 반영할 정도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불교가 융성했던 고려시대에 옻칠 또한 화려했다. 팔만대장경 경판에 쓰여 지금까지 전해지고, 천년 이상의 시간을 보낸 불상과 공예품과 같은 성보 유산이 전해지는 것도 반영구적인 옻칠의 위대한 보존성 때문이다.

정상엽에게 있어 불교는 자연스런 문화의 소산이고 옻칠은 개척해야 할 작가의 운명이다. 자신의 모교이면서 국내 유일의 옻칠을 가르치던 칠예과가 없어지면서 절반은 소명의식으로 자신의 공방에 ‘여비진’이라는 옻칠 아카데미를 개설해 일반인을 위한 옻칠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작품마다 옻칠화를 통해 대중에게 선보이려는 옻칠의 현대적 감수성이 녹록치 않다.      

▲ 정상엽 작가의 작업 모습.
작품 ‘休(휴)’에서는 세상의 중심에 서고자 하는 인간 의지의 표상이 담겨있다. 삶의 희노애락과 생주이멸이 교차하면서 유토피아적 세계를 갈망하는 본질적인 의지의 표현이다. 불교에 심취한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이른바, 거짓과 진짜, 속제와 진제의 구분이 무의미함을 말한 바 있다. 굳이 재생과 윤회를 한다면 그것은 본질적인 의지만이 스스로를 대변할 거라는 말로 새로운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다. ‘休’는 작가의 현대 옻칠을 위한 내밀한 발원이다. 삶에 관한 성찰이 풍요로운 미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옻칠 회화에는 옻칠을 기본으로 알껍질, 금, 은분, 삼베, 두부 등 다양한 재료들이 사용된다. 옻칠을 하고 말리고 사포를 하는 단순하지만 고단한 반복은 마치 절집에서 찻잎을 덖는 방식인 구증구포(九蒸九曝) 즉,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볕에 말린다는 뜻과 자연스레 겹친다. 그만큼 단순하지만 정직하면서 명쾌한 수행의 반복이다.

얼마 전, 어느 스님이 생옻칠을 한 찻판이라고 가져와 그 진위를 물어보기에 살펴보았다. 분명 가짜 옻칠인 카슈로 마감된 것이었으나, 판매자와 스님을 생각하니 그저 두리뭉실한 답변만 드리게 되었다. 이런 식의 진짜 옻칠과 카슈 도료가 구분이 되지 않고 마구 사용되는 게 절집이나 세간이나 퍽 아쉬운 현실이다.

그래서 비용과 노력의 수고스러움에 개의치 않고 옻칠의 현대화에 진력하는 정상엽의 작업이 실로 중요하다. 포기하지 않고, 매년 공예트렌드페어에 참여해 좋은 반응을 얻고, 꾸준한 개인전을 통해 현대 옻칠화의 방향을 설정하는 점, 또 오랜 장맛인양 묵혀진 옻칠처럼 자기 성찰이 담긴 작품을 선보인다는 것은 잊혀져간 불교미술의 한 축인 칠 문화를 되살려내는 의미심장한 노력이 아닐 수 없다.

구담 스님 불일미술관 학예실장 puoom@naver.com

[1401호 / 2017년 7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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