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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력보살’ 상륜 스님, 현대 비구니 시금석”

기사승인 2017.07.31  10:3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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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호 스님은 “은사인 법희선사의 가르침을 지침서로 삼아 수지하고 지켜나갔던 상륜 스님은 오늘날 납자들에게도 많은 귀감이 되어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은 상륜 스님.

“정진하는 사람은 삼계에서 애착하는 일들을 몽땅 털어버려야 하니 털끝만큼이라도 집착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아직 공부가 덜 된 것이다.”

탄호 스님 ‘무아상륜~’ 논문
상륜 스님 생애·수행 등 조명
쉼 없이 정진하는 가운데서도
참선·계율에 누구보다 철저해
“이상적인 대승보살 수행자상”


올바른 깨달음을 증득하기 위한 칼날 같은 삶을 살며 실행의 선법계와 자비의 중생계를 두루 펼쳤던 무아상륜(無我相侖, 1929~2007) 스님이 평소 제자들에게 강조했던 말이다. 자료의 한계로 근·현대 비구니스님에 대한 연구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원력보살’로 추앙받았던 상륜 스님의 생애와 수행을 조명한 논문이 나왔다.

조계종 교육아사리 탄호 스님은 최근 발간된 ‘대각사상’ 제27집에 ‘무아상륜의 생애와 수행’을 발표했다. 자료가 부족해 업적을 자세히 기술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탄호 스님은, 상륜 스님의 상좌 현암 스님이 모아두었던 자료들을 근거로 발자취를 좇았다. 탄호 스님은 “상륜 스님은 화두참구로 수선에 몰두하며 대중교화는 물론 미증유의 불사에 힘썼던 수행자였다”며 “불교계의 혼란 속에서도 후학들을 위한 포교와 전법, 대가람 불사 등은 입적 시까지 계속되었다. 상륜 스님의 행적을 통해 삼종회향(三種廻向)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으며 현대 비구니의 시금석으로 삼게 되는 계기였다”고 밝혔다.

논문은 생애와 업적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것에서 시작해 참선과 기도, 계율, 가람수호와 대중교화의 면면들을 세세히 살피고 있다. 1929년 11월20일 태어난 상륜 스님은 불심 깊은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청담, 고암 스님 등의 법문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열반경’을 공부하며 처음으로 출가의 길을 생각하게 됐는데, “여자도 성불할 수 있다”는 청담 스님의 법문을 듣고 발심하여 수덕사 견성암에서 출가를 결행했다. 그때가 1955년, 은사는 비구니 선맥의 중흥조로 일컬어지던 법희 스님이었다.

내원암에서 수선안거에 들어간 뒤 견성암, 보덕사, 승가사 등에서 15안거를 성만하고 1971년 승가사 주지가 되어 본격적인 도량장엄과 중창불사에 나섰다. 기도객 외 찾아오는 이 없던 궁핍한 도량 승가사는 상륜 스님의 수행자다운 면모에 감화받은 신도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그 원력불사를 지켜본 당시 수덕사 방장 원담 스님은 ‘무아’라는 법호를 내려주었고, 상륜 스님은 무아라는 호를 평생 간직하며 “스스로를 낮추고 극히 작은 탐심도 경계하며 살았다.”

당시 승가사 중창불사를 “미증유”라고 표현한 탄호 스님에 따르면 상륜 스님은 △대웅전·명부전·영산전·산신각·적묵당 확장 중건 △향로각·일주문·종각 신축 △범종 조성 △서래당·원주실·후원 개축 등을 통해 승가사를 일신했다. 또 1978년 육군 제5사단 영내에 호국 금강사를 건립하고 한국전쟁 전사자 100만명 천도위령재를 봉행했으며 1988년 장승포 앞마다 여객선 침몰참사 때 3일간 수륙 천도재를 거행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수많은 불사와 자비 실천 끝에 마지막 서원을 매듭짓는 의미로 1996년 용인 법륜사 창건불사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2000년경 건강 악화로 6~7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았는데, 그 후로도 7년을 더 생을 이어오며 2005년 법륜사 개원 선포를 함께했다. 스님이 입적한 건 2007년 12월28일. 세수 80세, 법랍 52세였다.

이처럼 불사와 자비 실천에 쉼 없이 매진하는 가운데서도 참선·계율에 있어 누구보다 철저했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새벽 1시면 일어나 목욕재계 후 전각을 빠짐없이 살피며 기도했고 새벽 5시까지 참선했다. 하루 평균 한두 시간 정도만 잠을 청하는 대신 나머지 시간은 원력 성취를 위한 참선정진과 염불수행에 몰두했다. 청정한 음식 공양을 수행의 생명으로 여겨 정갈하지 않거나 탁한 음식은 절대 입에 대지 않았는데, 우동을 먹을 때 맛국물은 버리고 맑은 물로 씻은 다음 죽염으로 간을 해 먹을 정도로 계행을 철저히 지켰다.

탄호 스님은 “상륜 스님은 수행덕목을 3가지로 겸수했지만 모든 분야에서 두루두루 섭렵하며 정진했다”며 “상좌들에게 자비행을 실천하였으며 포교 일선에서는 이타행을 실천하셨다. 은사인 법희선사의 뒤를 이어 정진과 포교의 일선에서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던 상륜 스님은 늘 ‘할 일이 많아 참 좋다’며 일과 정진은 하나지 둘이 아님을 일깨워주었다”고 말했다.

이어 “몸소 자비한 마음으로 실천수행했던 모습은 제자들에게 늘 이상적인 대승보살의 수행자상으로 보였다”며 “은사인 법희선사의 가르침을 지침서로 삼아 수지하고 지켜나갔던 스님은 오늘날 납자들에게도 많은 귀감이 되어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1402호 / 2017년 8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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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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