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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어효선의 ‘신기료 장수’

기사승인 2017.07.31  11: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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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 들머리서 신발 깁고 고치는
신기료 장수를 보살 눈으로 본 시

세상이 바뀌면 풍물이 바뀐다. 요즘은 신기료 장수를 흔하게 볼 수 없지만 지난 시절에는, 어느 곳을 가든 시장 들머리나 길가에 전을 펴고 있는 신기료 장수가 흔했다. 이것은 그 때의 풍물이었다.
신기료는 신을 고쳐주고, 기워 주기까지 했다. 떨어진 고무신이나 운동화에 가죽을 대어서 기웠다. 구두 밑창이나 뒤꿈치를 갈고, 징걸이에 구두를 엎어 놓고 장도리로 쳐서 징을 박았다. 남의 신을 예쁘게 다듬고 만져주는 일은 보살 행위다. 신기료의 손은 보살의 손이었다.   

학교에 갈 땐 칼 갈던 할아버지
집에 갈 땐 손님 없어 졸고 있어
일 없어 맥 빠진 할아버지 모습
안타까움을 보살 마음으로 노래
 
신기료 장수
                         어  효  선

창이랑 징이랑
좌악 벌여 놓고,
학교 길에 앉았는
신기료 장수.

그 앞을 지날 때면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하고 싶은
신기료 장수.

학교 갈 때 보면은
칼을 갈고,
집에 갈 때 보면은
언제나 조네.

오늘은 몇 켤레나
깁고 고쳤나,
텁석부리 할아버지
신기료 장수.

징걸이랑 장도리랑
좌악 벌여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신기료 장수.

‘태극출판사, ‘소년소녀 세계의 문학’ 한국편 4, 1975’

보살이 돼야 보살을 알아본다. 이 시는 보살의 눈으로 신기료 보살을 바라본 내용이다. 지은이 어효선 시인이 보살이었던 것이다. 꼬마가 다니는 학교길에 신기료 장수가 있다. 학교 가는 길에서 보고, 오는 길에서 본다. 언제나 그 자리에 그 할아버지다. 구두창과 구두에 박을 징을 벌여 놓았다. 모자를 벗고 꾸벅, 절이라도 하고 싶어진다. 

학교 가다가 보면 할아버지는 칼을 갈고 있다. 신바닥을 다듬으려는 거다. 학교서 오면서 보면, 졸고 있을 때가 많다. 일거리가 없어서일 거다.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신기료 할아버지다.  보살의 마음으로 바라보면 안타깝다. ‘저렇게 벌어서 아이들 공부시키고, 밥 먹고 살아야 하는 걸.’ 그 생각을 하니 더 안타까워진다.

보살이라 불리던 어효선(魚孝善, 1925~2004) 시인은 동요시 ‘파란 마음, 하얀 마음’(한용희 곡)으로 알려져 있다. 아호를 난정(蘭丁)이라 했다. 난초를 가꾸는 이라는 뜻이다. 동시를 쓰고 동화를 쓰는 여가에는 서예와 전각, 난초 기르기를 즐겼다. 서예와 전각은 집안에서 전해오는 기능이라 했다. 아버지는 서울에서 제작되는 활동사진(영화)의 자막을 맡아서 쓰던 서예가였다고 한다.

난정의 방안에는 난초분이 주루룩 있었고, 난초에 알맞은 그늘을 지워주기 위해 창문에 커텐을 치고 지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했으므로, 바른 서울말과 서울의 풍물을 글로 쓰고, 얘기해 주는 할아버지로도 알려져 있었다. 다툼이 있고, 경쟁을 하는 곳에는 발을 들이지 않는 보살이었다. 후배들이 마음으로 존경하는 선배로 지내다가, 실험용으로 쓰라며 시신까지를 기증하고  떠난 보살이었었다.

아빠와 같이 심은 꽃을 보며 피난으로 헤어진 아빠를 걱정하며 애태우는 6·25 때의 동요 ‘꽃밭에서’(어효선 시, 권길상 곡)를 부르면 애상적인 가락과 그 사연에서 눈물이 난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신현득 아동문학가·시인 shinhd7028@hanmail.net

[1402호 / 2017년 8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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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득 shinhd70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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