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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화재감정위원의 역할

기사승인 2017.08.21  15:3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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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유산 국외 반출 막는 최전방 파수꾼

   
▲ 금동관음보살입상, 백제, 높이 26.4cm. 거물급 고미술 수장자로 대구의 한 병원장이었던 이치다 지로(市田次郞)가 직접 몸에 지니고 일본 오사카로 밀반출했다.
요즘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전국 국제공항과 국제항만에는 여행객들로 무척 붐비고 있다. 그중에는 집안 대대로 보관하고 있다가 외국에 있는 자식에게 갖다 주기 위해서 또는 골동품 상인들이 팔거나 전시를 하기 위해서 해외로 가져가는 다양한 종류의 미술품들이 있다. 오래전에 만들어진 회화, 도자, 불상, 금속공예, 민속공예부터 근, 현대에 제작된 것까지 모든 미술품이 해당된다. 미술품 중에는 간혹 시대가 올라가고 자료적 가치가 높은 문화재급 미술품이 섞어 있는 경우도 있다. 여행객들이 가져가는 미술품 중 시대성과 가치가 있는 문화재는 국외로 반출하지 못하게 하고 우리나라에 보존하고 지키는 것이 바로 공항과 항만에 있는 문화재감정위원들의 중요한 역할이다.

무분별한 도난행위 방지 위한 목적
1968년 문화재감정관실 첫 설치
현재 인천공항 등 총 18개소 운영
긍지·자부심 가지고 최선 다해


문화재감정위원의 업무는 그리 간단하지도 만만하지도 않다.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무덤에서 도굴했거나 사찰, 박물관 등에서 훔친 문화재가 국외로 나가지 못하도록 철저히 감시하는 것도 문화재감정위원의 역할이다. 그만큼 도굴, 도난된 문화재는 국내에서 거래하기 어렵기 때문에 곧바로 국외로 밀반출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럴 경우에는 흔히 항공기와 같은 정상적인 경로가 아니고 대개 수출화물용의 컨테이너나 보따리장수들이 드나드는 국제여객선을 이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오랫동안 외세의 침략을 통해 많은 문화재들이 국외로 이미 나간 상태이다. 고려 말 왜구의 침략을 비롯하여 조선시대 임진왜란, 일제강점기를 겪으면서 무자비한 도굴꾼과 약탈자에 의해 우리 문화재가 온갖 수난을 당하였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얼마나 많은 우리 문화재가 건너갔는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 단편적으로 전하는 신문기사를 보면 그 수가 실로 믿기 어려울 만큼 엄청나다. 심지어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지에는 “일본은 19세기 말에서 1945년까지 한반도에서 최소한 10만여점의 문화재를 수집, 약탈하였다. 일본 정부의 비호를 받은 고고학자나 도굴꾼들은 개성, 경주, 공주 등에서 고분을 도굴하고 동시에 불상, 탑, 도자기, 회화, 고문서 등을 강탈해갔다”는 기사가 실려 있을 정도이다.(‘동아일보’ 2002년 1월30일) 1934년부터 1941년까지 총 7회에 걸쳐 조선총독부의 후원으로 일본 도쿄와 오사카에서 열린 ‘조선공예전람회’를 통하여 엄청난 숫자의 우리 문화재가 판매되었다. 당시 문명상점의 주인이었던 이희섭이 수집한 고미술품 중 일품만 선별하여 판매하기 위해 전시회를 열었다. 그때 발간된 7회 도록을 보면, 낙랑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불상, 고려청자, 석조물, 금속공예, 목공예품 등 5000여점이 출품되었다고 한다.(‘매일신보’ 1941년 11월24일) 개중에는 합법적으로 골동품상에서 구입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찰이나 박물관, 개인 소장의 문화재들이 약탈이나 도난당한 후 불법적인 거래를 통해 일본으로 건너간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니 전시되지 않은 것까지 합하면 실제로는 훨씬 많은 문화재들이 일본으로 반출되었을 것이다. 그 실상을 어떻게 다 조사하여 파악할 수 있을 것인가?

1945년 광복 이후 미군이 진주하여 3년간 통치한 미군정기에는 일본인 수장가들이 문화재 반출이 불가능하게 되자 일부 남에게 맡겨 두거나 땅속에 묻어두기도 했지만 일본으로 밀반출한 경우가 많았다. 조선전기주식회사 사장으로 막강한 재력가였던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는 고고자료, 불상, 도자기, 회화 등 모든 분야의 고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대구에서 제일가는 수장가였다. 오구라의 고미술품은 대부분 일본으로 밀반출되었으며 이후 도쿄국립박물관에 일부 기증하였다. 거물급 고미술 수장자로 대구의 한 병원장이었던 이치다 지로(市田次郞) 역시 삼국시대 불상 중 유명한 것으로 부여 규암리에서 발견된 백제의 금동관음보살상을 직접 몸에 지니고 일본 오사카로 밀반출하였다. 1907년 농부가 밭을 갈다가 우연히 발견한 2구의 보살상 중 하나로 일본 헌병대에 압수되었다가 1년 후 경매에 나온 것을 일본인이 구입하고 이치다에게 되팔았던 것이다. 이 보살상은 한동안 이치다가 가지고 있었으나 지금은 누구의 손에 들어갔는지 그 소재지를 전혀 알 수 없다.(‘잃어버린 불상을 찾아서’ 미진사)

1960년에 이르러 ‘한국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어 바다에서 발견된 문화재나 도난문화재를 신고했을 경우, 수백에서 수천에 이르는 보상금을 지급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문화재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문화재절도범이 본격적으로 등장하여 각종 도난사건과 불법적인 거래, 국외로의 밀반출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1961년 5월18일 계엄령 하에서는 국내 행정이 어수선한 틈을 타서 국내에 거주하던 외국인이 신라시대 불상을 비롯한 고려자기, 이조청자장군도(刀) 등 52점의 골동품이 든 14상자를 이삿짐으로 가장하여 국외로 반출하려다 김포공항 세관직원들에게 적발되어 입건된 사실이 있다.(‘조선일보’ 1961년 5월20일) 1958년부터 1963년까지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근무했던 그레고리 헨더슨 또한 150여점의 도자기를 비롯하여 불상, 불화, 서예, 전적류 등을 싹쓸이해 미국으로 가져갔다는 얘기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조선일보’ 2009년 3월19일)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하게 있었다. 1970년에서 1980년대에는 불상, 불화 등 불교문화재나 능묘 앞을 지키는 석인상, 석양, 석호와 같은 석물 등이 도난의 대상으로 인기가 높았다. 이 시기에는 자고 일어나면 없어진다고 할 정도로 도난 횟수가 빈번하였다. 1990년대 이후에는 ‘문화재가 돈이 된다’는 얘기가 떠돌면서 문화재 도난과 불법적인 거래가 급격하게 늘어나 피해도 점차 확대되었다.

문화재에 대한 무분별한 도난행위와 국외 밀반출이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1968년 2월에 김포공항과 부산 수영비행장에 문화재감정관실이 처음 설치되었다. 지금은 인천공항, 김포공항, 김해공항, 청주공항, 대구공항, 제주공항, 무안공항, 양양공항 등 전국 국제공항에 8개소, 인천항, 부산항, 평택항, 제주항, 군산항, 속초항, 동해항 등 국제항만에 7개소, 파주 도라산 출입사무소 1개소, 국제우체국 2개소 등 모두 18개소의 문화재감정관실이 있다. 오늘도 ‘문화재를 지키는 최전방의 파수꾼’이라는 문화재감정위원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문화재의 국외 반출을 방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앞으로 문화재감정위원으로서 문화재와 관련하여 전공분야인 불교조각을 감정하는 방법이나 진작과 위작의 경계선, 북한문화재의 유출과 모조품, 국보 및 보물급 불상의 도난 및 미수에 관한 이야기, 도난행위와 밀반출, 불법거래에 따른 법적인 규제 등등에 대해 간략하게 쓰고자 한다. 그것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문화재지킴이로서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문화재감정위원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문화재를 지키고 보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숙희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shlee1423@naver.com
 

[1404호 / 2017년 8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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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희 shlee14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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