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29. 마음이 곧 부처, 마음 밖에 부처가 따로 없다

기사승인 2017.08.22  13:05:25

공유
default_news_ad1

- 범부와 성인이 하나로 평등해진다

즉심시불은 마조 대표 사상
선사상 발달에 지대한 영향
제자 깨우치기 위한 방편
범부·성인 경계 없으면 부처

원문 : 배휴가 물었다.

“고래로부터 모두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하는데, 이 뜻을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어느 마음이 부처라는 것입니까?”

선사가 답했다.

“그대는 몇 개의 마음을 갖고 있는가?”

배휴가 물었다.

“범부의 마음이 부처입니까? 성인의 마음이 부처입니까?”

선사가 답했다.

“그대는 범부와 성인의 마음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배휴가 말했다.

“지금 선사께서 삼승 가운데 범부와 성인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사께서 어찌하여 없다고 말씀하십니까?”

선사가 말했다.

“삼승에 대하여 분명히 범부와 성인의 마음이 허망하다고 말했었다. 그대는 지금 이해를 하지 못하고, 오히려 유(有)에 집착해 공(空)이 실재한다고 하는군. 어찌 허망하지 아니한가? 허망하기 때문에 마음이 미혹한 것이다. 단지 범부와 성인의 경계를 여읜다면, 마음 밖에 부처가 따로 없다. (달마)조사가 서래한 이래 ‘모든 사람이 원래 완전한 부처’라는 것을 가르쳤다. 그대가 지금 알지 못하고, 범부에 집착하고, 성인에 집착해 밖을 향해서 구하려고 한다. 오히려 자기 스스로 미혹에 떨어져 있다. 그러기 때문에 ‘마음이 곧 부처’라고 가르친 것이다. 일념[한 순간]이라도 망정이 생겨나면, 곧 다른 세계에 떨어진다. 무시이래로 과거가 오늘과 다르지 않으며, 다른 법이 없다. 그러므로 ‘등정각을 성취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해설 : 원문에서 ‘마음이 곧 부처[卽心是佛]’라고 한 언구를 보자. ‘즉심시불’은 ‘평상심이 도[平常心是道]’와 함께 마조(709~788)의 대표적인 선사상이다. 즉심시불은 마조 이전에도 여러 대승경전에 언급되어있으며, 선사와 학자들로부터 자주 회자되었다. 즉심시불은 수행의 한 방편이라고 볼 수 있는데, 마조의 사상으로 구축되면서 조사선의 실질적인 기반이 되었고, 선사상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즉심시불은 제자를 깨우치기 위한 수시(隨時) 설법, 곧 방편에 불과하다.

원문에서 ‘조사가 서래한 이래…’는 부분을 보자. 조사는 달마를 가리키는데, ‘달마가 서쪽으로부터 중국에 온 이유는 무엇이냐?’는 뜻이다. 이 문구는 처음 선문답에서 공안으로 발전되어 수많은 선사들에 의해 회자되고 있다. 어구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선(禪)의 본질은 무엇이냐?’, 수행코자 하는 ‘그 마음의 본질이란 무엇이냐?’를 내포한다. 그만큼 달마라는 인물은 어떤 존재이냐를 떠나서 선의 근원이자, 마음 본질의 대명사로 여겨지고 있다.

원문에서 ‘조사가 서래하여 모든 사람이 원래 완전한 부처라는 것을 가르쳤다’는 부분을 보자. 달마의 어록, 돈황본 ‘이입사행론’에 ‘이입(理入)이란 경전에 의해서 도의 근본정신을 깨닫고 범부와 성인이 모두가 동일한 진성(眞性)을 갖고 있다고 깊이 믿는 것이다.…스스로 마음을 관하여 자신과 상대가 둘이 아님을 깨달으면 범부와 성인이 하나로 평등해진다’라고 하였다. 곧 본래부처인 본각사상에 입각해있는 내용이다.
원문에서 ‘범부와 성인에 집착해 밖을 향해서 구하려고 한다’는 부분을 보자. 이 내용은 ‘전심법요’에서 줄곧 언급되고 있다. 마음 차원에서는 ‘범부니, 성인이니’라는 것이 없다. 범부와 성인의 경계가 있다는 관념부터 없어야 한다. 그리고 깨달음은 본래의 마음을 떠나서 도를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마음을 여의고 부처를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곧 성인이든 범부이든 마음은 공통분모라고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화엄경’에서 ‘마음과 부처, 중생 이 셋은 차별이 없다[心佛及衆生是三無差別]’고 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황벽은 마음밖에 부처가 따로 없다고 하였다. 외부로 치달려 밖에서 부처를 구하지 말라는 것인데, 마조도 이 점을 강조하며 “밖에서 구하지 말라”고 하였다. 황벽의 제자인 임제(?~866)는 스승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안에서도 밖에서도 무언가 마주치는 것은 모두 죽여 버려야 한다’고 하면서 자기 자신의 철저한 자각을
강조하였다.

정운 스님 saribull@hanmail.net

[1404호 / 2017년 8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정운 스님 saribull@hanmail.net

<저작권자 ©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set_new_S1N12
set_hot_S1N12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