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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반대운동과 삼취정계

기사승인 2017.08.28  11: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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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최근 사드(THAAD)반대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주말이면 짐을 싸들고 익산에서 성주까지 차를 몰고 간다. 사드발사대, 엑스밴드레이다, 발전기 등이 배치된 구 롯데골프장이 있는 소성리에 가서 주민들의 저항에 함께 참여하며, 사드가 지나간 진밭교 앞에 평화를 사랑하는 전국 민중들이 직접 세운 원불교 평화교당을 밤낮으로 지키는 일을 한다.

연대운동을 할 때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경찰들과 실랑이도 벌이며, 쏟아지는 장대비 속에서 하늘을 향해 간절한 기도를 올리기도 한다. 한 해 전부터 진행된 사드배치 전 과정은 얼마나 터무니없는 거짓과 부정으로 뒤덮였던가! 삼세의 모든 부처님들은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이며, 반평화적인 현실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사드반대운동의 의미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외세로부터의 독립운동, 반문명적인 전쟁반대운동, 한반도의 영구평화운동, 그리고 평화를 위한 진리파지(把持)운동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그러나 현장에서 본다면, 이러한 몇 가지 정의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주민들의 고통은 형용할 수 없다.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 같으신 분들이 한여름의 뙤약볕에 앉아 농성하는 모습은 차마 지켜볼 수가 없다.

갈등과 분열의 한낮이 지나고 나면, 성주의 한자가 뜻하는 별고을이라는 말 그대로 하늘에는 초롱초롱한 별들이 이 땅을 비춘다. 시리아의 사막에서 보았던 쏟아질 것 같은 그 별빛과 다름이 없다. 내전이 일어나기 전에 방문했던 아름다웠던 홈즈라는 도시가 폐허가 되고, 수많은 어린이와 노인과 여성들이 죽어가는 텔레비전 화면을 보면서 인간의 무명이 벌이는 살육전에 몸서리가 쳐진다. 도대체 인간은 언제쯤 이러한 야만의 상태로부터 벗어날 것인가.

깊은 밤하늘을 보며 또한 많은 반성을 한다. 그동안 탁상 위에서 머리로만 불법의 논리에 집착하고, 입으로만 열반과 해탈을 말하고, 눈으로만 정토와 극락을 그리기만 했던 자신의 무지를 반성한다. 깨달음에 대한 의견 차이에 대해 그토록 참지 못하고 흥분하던 학술대회가 떠오르기도 한다. 학술논의의 그 공간들과 지금 일어나는 비참한 이 현실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학문은 나름대로의 독창성과 완결성을 지향하고 있는데, 불안한 이 사바세계는 여전히 선과 악의 대결이 멈추지 않고 있다.

대승불교가 발생한 이유 또한 그렇지 않을까. 특히 삼취정계(三聚淨戒)는 이 점을 명확히 부각시켜주는 것 같다. 대승경전은 여러 가지로 설하고 있지만, 결국 한 가지 뜻은 원효가 ‘범망경보살계본사기’에서 설하듯이 악을 끊는 섭율의계, 선을 닦는 섭선법계, 중생을 이익 주는 섭중생계는 자리와 이타가 일체되는 불사약인 감로이다. 초기불교의 계율을 계승하면서도, 중생의 고통을 줄이며 해소하는 구제의 종교가 될 것을 더욱 부각시킨 것이다. 우리가 실천하는 모든 계율의 최종목표는 이 세계의 행복과 평화를 위한 것이다.

전문가들의 견해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모든 면에서 정당성을 갖추지 못한 사드는 악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거해 이것을 막는 것은 선이다. 현재의 패권국 미국이, 떠오르는 세계의 패권국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반도를 무대로 벌이는 힘겨루기가 사드문제다. 그런데 왜 미국의 무기로 인해 이 땅의 백성이 막대한 피해와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인터넷을 통해 잠깐만 조사해보면 이 사실을 명백히 알 수 있다. 사드는 북한을 막는 방어용이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한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MD)의 일환임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관리의 언급이나 국방성의 홈페이지가 스스로 알려주고 있다. 강자에게 굴복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쫓는 비겁한 보수언론, 정치가, 국방부의 거짓말은 이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여기에 타협과 중립은 없다. 평화파괴의 주범에 항거하는 주민과 함께 하는 시민운동가들은 중생구제의 전면에 나선 대승정신의 구현자들이다. 현실을 외면하고 머릿속에서만 경전의 말씀을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관습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불성의 자각에 의거한 진리실현의 장이 드러난다. 이야말로 입처개진(立處皆眞)의 깨달음을 사회와 인류 속으로 확산하는 대승의 길인
것이다.

원영상 원광대 정역원 연구교수 wonyosa@naver.com

[1405호 / 2017년 8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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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상 교수 wonyo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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