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중생희견보살이 생각하기를) ‘내가 비록 신통력으로 부처님께 공양하였으나 몸으로써 공양하는 것만 같지 못하니라.’ 그리고는 곧 여러 가지 전단, 훈륙, 도루바의 향과 필력가, 침수, 교향들을 먹고, 1200년 동안 첨복 등의 꽃 향유를 마시며, 몸에 바르고 일월정명덕불 앞에서 하늘 보배 옷으로 스스로 몸을 감고, 거기에 향유를 부어 적신 뒤 신통력의 서원으로써 1200년에 걸쳐 스스로 몸을 태우니, 그 광명이 80억 항하의 모래 같은 세계를 두루 비추었느니라.”대승불교를 대표하는 ‘법화경’에서 약왕보살 전신인 일체중생희견보살이
조계종 유일 불교종립 초등학교 은석초등학교가 우수사립학교로 인정받았다. 서울시 교육청이 올해 처음 실시한 ‘사학감사 인센티브제 대상학교’에 선정됐다. 선정된 사립학교는 3년간 특정감사와 복무감사가 면제되고, 종합감사도 4일에서 2일로 축소되는 등 큰 혜택을 받게 된다. 서울시 교육청은 올해 5월 초·중·고·특수학교 등 366개교와 123개의 학교법인 등 총 489개 기관을 대상으로 학교재정 운영의 건전성 및 효율성, 학교행정의 효과성, 학사운영의 적정성 등을 평가, 35개교와 9개 법인을 우수기관으로 선정했다. 은석초등학교의 이런
사람 목숨은 고래심줄처럼 질긴 듯싶지만 동시에 허망할 정도로 가볍다. 우리 피부는 날카로운 쇠붙이 앞에 잘려나가지 않을 도리가 없고, 뱃속은 독성 강한 이물질 앞에 속절없이 무너진다. 출가자 실천규범인 율장에서 무기를 지닌 이와 함께 가거나 그에게 법을 설하는 것조차 금지한 것은 무기의 위험성과 불교의 비폭력 정신을 잘 보여준다.옛 스님들 일대기를 다룬 역사서에는 전법과 신앙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스님들이 숱하게 등장한다. 세상의 중심이라는 ‘중화(中華)’에 ‘오랑캐의 것’이라는 불교가 정착하는 과정에 무수한 시련이 있었고,
2600여년 전,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는 히말라야산맥과 타클라마칸·고비사막을 건너 동아시아에 이르렀다.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은 불살생 차원을 넘어 동물들을 적극 보호하고 이들을 살리려는 방생으로 나아갔다. 고승들의 출가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동물이 자주 등장하는 것이 우연은 아니다.신라 자장 스님은 사냥으로 잡은 꿩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산문에 들었고, 7세기 혜통 스님은 자신이 잡아먹은 수달이 뼈가 되어서도 새끼들을 보호하려는 모습을 보고 출가했다. 통일신라 율사 진표 스님도 사냥하던 중 버드나무에 꿰어놓았던 개구리
혈연(血緣), 지연(地緣), 학연(學緣)은 성공의 지름길이면서 버려야할 폐습이었다. 유난히 강한 ‘우리’라는 의식은 공정한 경쟁보다 인연을 따지게 했고, 불합리한 결과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우리’라는 울타리를 넘어선 글로벌한 세상이 되면서 핏줄의 끈기는 묽어졌고 고향 없는 세대에 지연은 잊혀졌다. 학연 또한 ‘동문’이라는 의미 이상을 갖지 못하는 세상이 됐다. 그럼에도 같은 핏줄에 정이 가고, 신토불이(身土不二)가 역시 경쟁력이다. 같은 배움의 인연이 서로를 한번 더 돌아보게 만드는 묘한 끌림 또한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권력이 있거나 돈이 많다고 피해가지 않는다. 죽음은 그래서 평등하다. 하지만 죽은 뒤에 그 시신이 어떻게 다뤄지냐는 지위와 권력에 따라 확연히 다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권력자들은 거대하면서도 은밀한 무덤을 만들어 자신들의 시신 훼손을 막고자 했다. 사후에 현세의 삶이 재현된다는 믿음으로 온갖 귀중품은 물론 시중들 사람들까지 함께 묻도록 했다.반면 불교의 죽음은 극히 소박하다. ‘옷 세벌에 발우 하나(三衣一鉢)’면 충분하다는 출가자들은 죽어서도 별다른 자취를 남기지 않았다. 일부 고승의 경우 화장한 뒤
흔히 무병장수는 최고의 복 중 하나로 여겨진다. 불자들도 절에 가서 병 없이 오래 살게 해달라는 기도를 자주한다. 불보살의 가피가 아니더라도 불교를 믿고 잘 실천하면 건강하게 장수할 가능성이 크다. 분노와 탐욕을 다스리면 스트레스가 적을뿐더러 욕심내지 않고 적당량을 먹기에 각종 성인병과 암에 걸릴 확률도 낮아진다. 게다가 운동 효과가 큰 108배까지 꾸준히 하면 금상첨화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스님들이 장수했던 사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산 수덕사 초대방장을 지낸 혜암 스님이 101세, 칠보사 조실이었던 석주 스님이 94세까
고통을 싫어하고 즐거움을 좋아하는 것은 모든 생명의 속성이다. 그래서 불교에선 나와 남이 둘이 아니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생명을 희생시키는 것을 악업으로 간주한다.2600년 전 인도사회에서는 동물을 제물로 바쳐 복을 얻으려는 제사문화가 만연했다. 희생되는 동물의 수도 적게는 한두 마리에서 많게는 수백수천 마리에 이르렀다. 부처님은 이러한 희생제의로 복을 받기는커녕 다른 생명을 무참히 죽인 무거운 과보를 피해갈 수 없다고 비판했다.불교의 생명관이 가장 명료하게 드러나는 것이 부처님의 전생을 다룬 ‘자타카(본생담)’이다. 여기에
한 사람의 삶이 역사가 되는 경우가 있다. 다길(多吉) 김경호 사경장의 삶이 그렇다. 정부는 지난해 사경장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신규 지정하고 그를 사경장 보유자 1호로 지정했다. 김 사경장은 고려 이후 억불의 조선을 거치며 700년 가까이 명맥이 끊기다시피 한 사경의 전통을 이 시대에 되살린 인물이다. 김 사경장은 40년 넘는 세월을 오로지 고려사경의 전통복원을 위해 바쳤다. 외길이었으며 신산(辛酸)의 여정이었다. 선대의 유산들을 살피고 연구하는 것은 물론 재료 하나까지 혼자 힘으로 복원했다. 금과 은을 재료로 쓰는 사경은 비용도 많
불교는 1700년 동안 온갖 부침을 거듭하며 한국인의 사상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호불 군주의 지지 속에 불교는 화려한 꽃을 피우기도 했고, 혹독한 억불의 회오리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할 때도 있었다. 불교가 숭상되는 시대에는 위대한 사상가가 돋보이지만, 불교가 탄압받는 암울한 시대에는 법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순교자가 빛을 발한다. 한국불교에 수많은 순교자가 있었고, 그들에 힘입어 한국불교는 오랜 역사를 이어왔다.이 땅에 처음 불교인의 피가 흩뿌려진 것은 삼국시대였다. 고구려와 백제가 왕들의 주도로 각각 372년과
‘사람이 도를 넓히는 것이지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니다(人能弘道 非道弘人)’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수승한 진리라도 그것을 널리 펴는 것은 온전히 사람의 몫이다. 그 일이 순탄할 수 있지만 때로는 목숨까지 내놔야 한다. 진리의 전파가 순교와 맞닿아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순교는 진리를 위해 죽음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가장 적극적인 종교적 실천인 셈이다.불교는 정법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다는 ‘위법망구(爲法忘軀)’를 찬탄해왔다. 2600여년 전 인도 변방에서 시작된 불교가 한국에까지 전승될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이들의 순교가
지구가 뜨거워지면서 지구촌의 미래가 회색빛으로 변하고 있다. 견디기 힘든 더위와 추위, 가뭄에 따른 화재와 폭우, 폭설 등 이상기온이 일상이 됐다. 지구는 지난 100년간 1℃가 상승했다. 10만년 동안 5℃가 오른 것을 감안하면 온도의 증가 속도는 지난 100년간 100배가 빨라졌다. 이 속도대로면 40~50년 안에 1℃가 더 오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불과 1℃의 증가로 지금 인류는 엄청난 재난을 수시로 겪고 있다. 그런데 앞으로 1℃가 더 오르면 온도가 오르는 속도를 제어할 수 없는 불가역적 상황이 올 것으로 보고
계율은 불교의 정체성이며 승가공동체를 지탱케 하는 근간이다.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수많은 이가 계율에 의지해 진리의 길로 나아갔고 깨달음을 이뤘다. “내 차라리 계를 지니고 하루를 살다가 죽을지언정 계를 어기며 백년을 살기 원치 않는다”던 신라 자장율사처럼 계율을 지키기 위해 어떤 고난이나 죽음까지 기꺼이 감수했다. 역사서에는 죽음의 순간에서조차 계율에서 한 치도 어긋나지 않고자 했던 스님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중국 동진 때 고승인 여산혜원 스님(廬山慧遠, 334~416)은 승속의 제자들과 백련결사운동을 전개한 중국 정토종의
한국사회에서 재가불자의 기준처럼 모호한 것도 드물다. 정식적으로 계를 받지 않아도 어떤 스님에게 법명을 받았다거나 부모님이 불자라거나, 혹은 불교가 좋아서 불자라고 해도 딱히 타박하지 않는다. 엄격한 과정을 거쳐 세례를 받거나 입문을 하는 다른 종교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불교가 오랜 세월 우리의 역사 속에서 민족종교의 형태로 자리 잡으면서 생긴 현상이다. 이런 개방성은 물론 불교의 장점이다. 그러나 불자의 개념을 모호하게 만들어 불자로서의 의무와 권리, 역할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타종교에 비해 신도들의 조
유교 중심의 전통사회에서 죽음은 철저히 가려지고 외면됐다. ‘아직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 수 있겠느냐(未知生 焉知死)’는 공자의 말처럼 모든 사고의 주파수는 죽음이 아닌 삶에, 내세가 아닌 현세에 맞춰졌다. 반면 죽음은 두려움과 기피의 대상이었다. ‘죽을 사(死)’와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넷 사(四)’까지 꺼려했으며, 건물의 4층을 ‘F층’으로 표시하기도 했다.죽음에 관한 견해는 현대에 이르러 크게 바뀌었다. 죽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삶의 본질에 대한 사유와 재발견으로 이어진다는 게 오늘날 학계의 통설이다. 1960년대부터
우리가 대부분 학문을 함에 있어서 힘을 쓰는 공부를 하는데 꼭 밖으로 향해 치달리면서 구할 필요가 없다. 마땅히 자성을 위주로 해서 여기에 힘을 써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자성을 단번에 볼 수 없다면 습기의 두터움과 얇음을 점검해서 절차탁마하면서 근본처에 힘을 써야한다.그 자성은 본래가 밝아서더 이상 늘어남이 없으나탐진치와 애욕이 종자 돼거기에 빠져 곤경 당할뿐비유하면 마치 거울을 갈 때 먼지와 티끌이 떨어져 나가면 광명이 저절로 나타나는 것과 같다. 우리가 하루하루 공부하는 데 있어서 가장 간명하고 가장 절실한 것이 이것보
그러므로 좌참한다고 칭할만하다. 우리 법형이신 고매 법사에게 직접 찾아갔는데 법사께서 깊이 법기로 존중하여 일찍이 견백이라는 자를 지어 주었다. 내가 이에 설명을 한다. 불성이 번뇌 속에 있을 때에는 마치 마니주가 변기 속에 떨어져 있는 것과 같고 연꽃이 진흙 속에 있는 것과 같다. 그러면서도 번뇌의 더러움에 마니주의 광명이 어두워지지 않고 오욕의 진흙에 연꽃이 오염되지 않는다.품은 뜻 가다듬지 않으면결코 단단해지지 못하고마음 제대로 씻지 않으면절대로 밝아지지 않을 것대개 그 자성이 천연적으로 그러한 것이니 본래 청정한 광명은 밝고
진실로 공생이 세존의 행리처를 간파한 것처럼 자신의 집 속을 간파해낼 수 있다면 이것은 집에서 일상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살아 움직이는 일에 불과할 뿐이다. 다시 어떤 법을 일러 희유한 법이라고 하겠으며 어떤 일을 희유한 일이라고 하겠는가. 만약에 이것을 보지 못하고 단지 문자의 형상으로만 다투어가면서 찬탄한다면 훗날 고개 돌려 한 번 바라볼 때 희유하지 못한 것을 보게 될까봐 걱정스럽다. 하생이 법어를 청했으나 이 노인은 설할만한 법이 없다. 그러므로 그 말에 따라서 이렇게 말해주노라.향림이라는 자 이야기대도(大都)에서 온 자선장로
몸이 이루어지자 망상이 영욕과 근심과 기쁨과 호오와 희노애락과 질병과 재앙으로 흘러다니고 생사가 교대로 뒤바뀌는 데에까지 흐르면서 갖가지로 변화를 일으켜 본성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 이것은 자체는 본래 진여인데 지금은 여여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초목과 미세한 먼지까지모습가진 모든 것이 진여생사윤회를 벗어나는데뜻을 두면 응당 여여해야이 때문에 선사께서 본래 지니고 있는 것에 의지해 인도해주면서 “그대는 마땅히 진여이어야 한다”고 하면서 자를 응여(應如)라고 지어준 것이다. 이 뜻을 말해보자면 본래는 자체가 진여인데 지금 현재는 진
그런데 유독 공만이 후세에 광명이 사라지지 않도록 염려하는 마음을 가졌으니 그가 마음을 보존하면서 근본을 중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와 함께 좌담을 할 때에 가슴 속에 온축되어있는 것을 두드려보니 오로지 이치를 관하는 데 집중하고 있고 율행을 삼가하고 있다.허물 쌓는 게 심해지면업은 더욱 더 무거워져괴로운 길만 길어지니마음 비우지 못한 잘못그렇다면 그가 나아가고자 하는 바가 세간에서 그럭저럭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과 비길 것이 아니다. 내가 크게 가상하게 여겨서 우선 유광(愈光)이라는 자를 주었다. 나는 그것이 너무 튀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