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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있지만 갈 수 없는 고향

기사승인 2017.10.02  1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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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라도 한순간에 실향민 될 수 있는 나라

추석이다. 명절은 바삐 사느라 잊고 지내던 가족들이 모이는 시간이고 내 뿌리를 생각하는 시간이다. 고향은 내가 나고 자란 곳일 수도, 조상이 대대손손 살아온 곳일 수도 있으며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고향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미리 차표를 사는 번거로움을 흔쾌히 감수하고, 차가 밀려도 사람들은 고향을 찾는다. 올해처럼 연휴가 긴 명절에는 고향방문 대신 여행을 떠나는 이들도 많으나 어느 곳에 있든 명절의 의미는 따뜻할 거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명절이 모두에게 즐거운 날은 아니다. 오래전 남북분단으로 북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하는 실향민을 텔레비전에서 처음 접한 적이 있다. 고향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북에 두고 온 사연을 들으며 얼마나 쓸쓸하고 그리울까를 생각하니 그들의 슬픔이 느껴졌다. 실향민들에게 명절은 단장의 아픔이 더욱 진해지는 그런 시간일 것이다. 분단이 60년을 넘어가면서 생존하는 실향민들의 숫자는 자꾸 줄어드니 실향의 슬픔이 얼마나 오래도록 유효할까? 사실 실향민은 분단된 조국에서만 생기는 게 아니다. 충주댐이 생기면서 일대가 물에 잠겨 4만 명이 넘는 실향민이 생기기도 했다. 해마다 명절에 실향민들은 고향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충주호에 대고 절을 올린다고 한다. 몇몇 고옥들은 수몰의 위기를 면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져 복원된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정든 고향집이며 뛰놀던 들녘이며 수몰된 안타까운 사연들이 충주댐 안에 고스란히 잠겨 있을 것이다. 이산가족의 설움은 없다지만 국책사업으로 고향을 떠나야하는 이들의 사연은 전국 곳곳에 얼마나 다양하게 많을까?

한가위에도 갈 곳 없는 실향민
지진·원전으로도 실향민 발생
한국도 재난실향민 가능성 높아


이웃나라 일본에도 또 다른 종류의 실향민이 있다. 2011년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로 발생한 후쿠시마 사고가 만든 실향민들이다. 얼마 전 영국출신의 한 사진기자가 후쿠시마 재해 현장을 방문해 찍은 사진 가운데 유독 한 장이 기억에 선연하다. 2011년 3월에 멈춰져 버린 달력이 유독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사진 속 풍경에는 집안의 집기들이 다급했던 그 시간을 말해주듯 여기저기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는 가운데 벽 한쪽에 달력이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그 시간 이후 그 집에 살던 사람들이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오지 못했다는 걸 멈춰진 달력이 말해주고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피난길에 오른 사람들 가운데 20% 이상은 적어도 한 번 자살을 생각했다고 한다. 실제 자살자 수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자수성가해서 일가를 이룬 사람이든 가진 게 별로 없던 사람이든 누구나 할 것 없이 소개 명령이 떨어지고 피신하기에 바빴던 시간을 상상해본다. 시간이 흐르면 다시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을 그 사람들은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만약 지진과 쓰나미로 재해가 끝났더라면 충분히 가능했을 상상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예기치 못한 핵발전소 폭발로 인해 그들의 상상은 말 그대로 그저 상상일 뿐이었다. 안정된 직장과 단란했던 가정은 한 번의 핵사고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 속에 사람들을 밀어 넣어 버렸다. 자발적인 선택이 아닌 재난을 경험하며 후쿠시마 피난민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방사능 피폭으로 인해 건강까지 위협을 받는 지경이지만 아무도 책임지는 주체가 없는 이 기괴한 상황을 그들이 온전한 정신을 갖고 있는 한 받아들이기는 무척 어려울 것이다.


피난의 시간이 6년을 훌쩍 넘겨도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고향땅을 가진 사람들, 그들의 상황이 전혀 남의 일로 여겨지지 않는 것은 우리도 충분히 그들과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현실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핵발전 밀집도를 자랑하는 우리나라를 두고 세계 에너지 전문가들은 위험성을 경고한다. 그런데도 한 곳에 핵발전소가 8기나 있는 울산에 신고리 5,6호기를 더 짓자고 한다. 주변에는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울산석유화학단지 등 굵직한 국가산업단지가 밀집해 있다. 인구도 382만 명이나 살고 있다. 활성단층대는 60개나 있으며 지진이 1년 새 600번도 넘게 일어난 지역이다. 더구나 세계적으로 사양 산업이며 전 세계를 통틀어 고작 30개국만이 사용하는데 왜 이토록 핵발전을 고집할까? 2016년 전 세계 재생에너지 평균발전량은 25%에 육박했다. 100% 순수한 국산에다 오염물질도 없고 에너지원은 영원히 공짜인 재생에너지로 많은 나라들이 옮겨가는 이유는 친환경적이어서도 아니고 생태적이어서도 아니다. 이유는 단 하나 그것이 가장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의 선택은 무엇이어야 할까? 영원한 안식처인 고향을 언제고 찾아갈 수 있기 위해 우리의 선택은 정말 무엇이어야 할까?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410호 / 2017년 10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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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형 eaglet7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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