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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종교는 방편

기사승인 2017.10.02  11:5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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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뇌신경 세포에는 정체성이 없다

학자들은 ‘종교와 과학이 같은 분야를 다루는지 아니면 다른 분야를 다루는지’에 대해서 논쟁한다. 생물학자 굴드(Stephen J. Gould)에 의하면 종교와 과학은 서로 겹치지 않는 다른 분야를 다루지만(NOMA nonoverlapping magisteria), 즉 종교는 정신세계와 사후세계를 다루고 과학은 물질세계와 현실세계를 다루지만, 도킨스에 의하면 같은 분야도 다룬다. 그 이유는 종교가, 과학의 영역인, 생명과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려 들기 때문이다. 종교경전에는 이런 내용이 명확하게 나타나있다. 예를 들어 기독교 창세기와 불교 아간냐경(세계의 기원에 대한 경)은 이런 문제를 자세히 다룬다. 하지만 학자들 의견은 대체로 ‘종교가 집단의 결속과 심리적 불안해소를 위해 방편(구라)을 폈다’는 쪽이다. 잡다한 복수(複數)의 불안을, 신이라는, 초대형 방편(구라) 하나로 덮어버린다는 것이다. “모든 게 신의 뜻이라니깐!” 이렇게 말이다.

개미는 정체성없이 사회만 존재
인간은 또한 오온의 집합일 뿐


진화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인문사회학은 모두 생물학으로 귀결된다. 생물학으로 인문사회학을 다 설명할 수 있다”는 그의 주장에, 인문사회학도들은 화를 내며 큰 소리로 윌슨을 비난한다. (학회장에서 윌슨의 머리에 물을 끼얹었다.) 1

그런데, 관계(구조)는 의식이 없어도 가능하지만, 정체성은 의식이 있어야 가능하다. 예를 들어 개미에게는 의식이 없으므로 사회만 있다. 의식이 없으므로 정체성이 없고 따라서 사실상 개인이 없다. (개미에게는 정신적인 정체성은 없고 단지 화학적인 정체성만 있다. 이것은 화학물질인 페로몬에 의해서 결정된다. 개미는 상대 개미가 방출하는 페로몬을 통해서, 상대가 같은 군집 소속인지 아닌지 여부와 상대의 집단 내 계급, 즉 역할을 파악한다. 그 개체를 특정한 ‘개체’로 기억하는 게 아니다. 기억이 없으므로 정체성도 없기 때문이다.) 개미에게 의식이 생기면 인간이다. 

각각의 인간도 그렇다. 1000억 개나 되는 뇌신경세포 중 각각의 세포에는 정체성이 없다. 미술·문학·예술·감성·이성은 각각의 뇌신경세포에는 없다. 그런데 개미 군집에 군집영혼이 없다면, 뇌 군집에도 당연히 군집영혼이 없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영혼이 없다. 인간은 색·수·상·행·식(뇌) 오온의 모임일 뿐이다. 이게 불교 무아론(無我論)이다.

불교는 일찍이 2500년 전에, 개체와 사회와의 관계를 한마디로 정리했다. 연기론(緣起論 interdependent origination ‘모든 것은 여러 인연이 모여서 일어나고 존재한다’는 이론)에 의하면, 개인과 사회는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 (불교도들이 지켜야할 것은 무아연기(無我緣起)라는 총론이지, 무아연기가 세간에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방법과 양상에 대한, 각론이 아니다. 그건 학자들의 몫이다. 이 점을 간과하면 광신으로 치닫는다.)

아이러니를 소개한다. 선천적인 장님이 기적적으로 시력을 회복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놀랍게도 해피엔딩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이 사람은 갑자기 나타난 시각계에 혼란을 느낀다. 눈부신 빛이 불편하다. 태어난 직후 처음으로 눈을 뜬 이후 일정기간 빛에 노출이 되지 않으면, 시각중추가 영원히 발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동물실험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그래서 다시 장님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오래 전에 시각 대신 청각·후각·촉각·공간감각을 발달시켜 잘 적응하여 편안한 ‘빛이 없는 세계’로 되돌아가고자 한다.

해피엔딩도 있다. 생각 외로 많은 사람이 단안시(單眼視 monocular vision)증을 앓는다. 두 눈이 있지만 서로 공조를 못 해서 입체적으로 보지 못한다. 이런 사람 중에 시각연구자가 있었다. 이 사람이 훈련을 통해 50대 후반에 쌍안시(雙眼視 binocular vision)를 회복하고 표현한 시적인 감상이 있다.

'지금 눈이 내리고 있다. 눈과 눈 사이의 공간이 보이고, 나는 내리는 눈 속에 서 있다.' 모든 사물이, 전에는 눈앞의 스크린에 비치듯 하나의 평면에 겹쳐져 보였는데, 지금은 갑자기 깊이와 원근감을 가지고 나타난 것이었다. 그리고 자기도 그 깊이와 원근 속으로 들어갔다! 하나가 되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우리는 축복 속에 살고 있다. 감각의 세계는 놀라운 축복이다. 인식의 세계는 더 놀라운 축복이다. 인식은, 우리가 축복 속에 살고 있다는 걸 알게 하기 때문이다.

강병균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
bgkang@postech.ac.kr
 

[1410호 / 2017년 10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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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교수 bgkang@post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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