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70. 이스터 섬은 우리의 미래

기사승인 2017.10.17  10:23:15

공유
default_news_ad1

- 휴양지에 남겨진 쓰레기 양은 얼마나 될까?

참 긴 연휴였다. 명절의 의미가 많이 퇴색해버린 시절 탓일까? 긴 휴일 동안 여행을 떠난 사람들이 상당했던 것 같다. 고속도로는 연휴 대부분의 시간 동안 저속도로가 되어야했고 연휴 막바지에 인천공항은 연일 사상 최대 인파를 기록했다.

15세기 숲 사라진 이스터 섬
석상만 남은 채 불모지로 변해
지구 몸살 난 현재 상황과 비슷
삶 보는 이분법적 시선 넘어서야


베트남 휴양지에 있는 세련된 리조트에서 휴식을 즐기고 있다며 한 지인이 SNS에 올린 사진을 보니 이스트 섬이 생각났다. 사라진 문명의 대명사와도 같은 이스트 섬의 오늘날 모습은 불모지나 다를 바 없는 황량한 자연환경에 우뚝 서 있는 석상들뿐이다. 한때 이스터 섬의 석상은 세계의 불가사의였다. 그곳 환경에서 거대한 석상이 여기저기 있을 수 있는 것은 외계인이라는 막연한 존재외에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의 힘으로 복원한 이스터 섬의 과거는 놀라웠다. 사람들의 상상과 달리 섬의 토양은 비옥했다. 울창한 아열대숲이 초지 위에 펼쳐져있었다. 숲에서 가장 흔한 나무는 소나무 종류였다고 한다. 그 울울창창한 소나무로 튼튼한 배를 만들어 타고 바다로 나가 고래를 잡았다. 이스터 섬 초기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된 돌고래 뼈가 어마어마했다. 이스터 섬 주변에서 잡을 수 있는 가장 큰 동물을 낚시해서 먹고 살았다는 얘기다. 그 울창한 소나무는 거대한 석상을 이동시키고 세우는데도 쓰였다. 석상에 대한 수수께끼는 외계인이 아닌 소나무였던 것이다. 그랬던 이스터 섬은 오늘날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스터 섬 사람들은 나무를 베어 쓸 줄만 알았지 지속가능성을 생각할 지혜가 모자랐다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15세기 이스터 섬에서 소나무가 멸종되고 숲이 사라졌다. 카누를 만들고 땔감을 얻고 석상을 이동시키고 세우느라 숲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있던 숲마저 정원을 만든다며 없애버렸다. 소나무가 사라진 배경에는 쥐들이 굶주려 솔방울을 먹어치웠던 이유도 있고 나무의 번식을 돕던 새가 사라졌던 이유도 있다. 연결된 그물코가 하나 둘씩 빠지면서 결국 모든 생태계가 망가져버린 것이다. 쓰레기더미에서 돌고래 뼈가 발견되지 않은 시점도 대략 소나무가 사라진 시점과 맞아떨어진다. 배를 만들 나무가 없으니 고래를 어떻게 잡을 수 있었을까. 더욱 놀라운 사실은 고래 뼈가 사라지면서 쓰레기 더미에서 사람 뼈가 흔하게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먹을 것이 부족해지자 급기야 가장 큰 고깃덩어리인 사람에게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숲이 사라지면서 불을 지필 땔감이 사라졌고 개울과 샘이 말라버렸다. 숲이 사라지니 비와 바람에 토양이 침식되고 양분은 바람에 날리며 급격하게 불모지가 되었다. 농작물 생산량이 줄어드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이스터 섬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어리석기 그지없다. 그러다 그 모습이 현재 우리 인류의 모습과 무척 흡사하다는데 그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기후변화라는 말이 세상에 나온 지가 얼마나 됐을까? 1992년 리우환경회의에서 기후변화협약이 체결되었으니 적어도 30년은 됐다. 그동안 어떤 진전이 있었을까? 기후변화의 심각성은 나날이 더해가기만 한다. 이스터 섬에도 분명 그들의 삶에 문제가 있다고 우려하던 목소리가 없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그 목소리는 힘을 얻지 못했다. 지금 우리의 모습과 뭐가 다를까. 가뭄과 홍수, 지나친 육식, 열대우림의 벌목 등으로 인해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지만 말들의 잔치만 요란하다.

베트남에 있는 휴양지는 리조트가 들어서기 전에 어떤 모습이었을까? 정확한 모습이야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야생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 야생을 망가뜨리고 리조트가 들어서고 사람들은 조각나버린 자연을 즐기려 비행기에 몸을 싣고 그곳을 방문한다. 방문한 이들이 쓰는 에너지며 남겨진 쓰레기들의 양은 어느 정도일까? 그렇게 버려지는 것들로 그나마 남아있던 자연마저 빠른 속도로 망가질 것이다. 이런 내 생각을 지인의 SNS에 몇 자 적었더니 돌아오는 사람들의 반응이 적잖이 놀라웠다. ‘직업병이네’ ‘정말 불치병이다’ ‘아니 쉬러 간 곳에서도 그런 생각을 해야 하나?’ 이 부분에서 나는 늘 답답하다. 삶을 왜 이렇듯 이분법으로 봐야 할까? 우리에게 직간접으로 영향을 주는 자연조건이든 사회현상이든 모두 우리의 환경이다. 그러니 우리 삶과 환경을 어떻게 구분해서 생각한단 말인가. 내 삶이 어떻게 자연에 부담을 덜 주고 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사는 동안 쉼 없이 계속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스터 섬은 우리 모두의 미래다. 미래를 미리 봤으니 이제 우리의 선택은 보다 선명하지 않은가.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411호 / 2017년 10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최원형 eaglet777@naver.com

<저작권자 ©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set_new_S1N12
set_hot_S1N12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