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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지혜의 눈이 없으면 흑암지옥

기사승인 2017.10.17  10:2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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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마음의 분별이 있을 뿐 본래 중생은 없어

인간의 고통은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으로 이루어진다. 육체적 고통은 몸으로부터 오고, 정신적 고통은 마음으로부터 온다. 육체적 고통은 육체적 이상(부상·질병·기형·피로·기능장애)으로부터 오고, 정신적 고통은 정신적 이상인 감정장애(권태·탐욕·분노·증오·시기·질투)와 인식장애(환상·망상·섬망·우둔·미련·어리석음·정신분열·기억상실·기능장애)로부터 온다. 마음의 고통은 모두 여의었으나 육체적 고통을 여의지 못하였으면 유여열반이고, 육체적 고통까지 모두 여의면 무여열반이다. 육체를 가진 한, 한서(寒暑)·기아·질병·신경계손상·신경계이상 등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으므로 무여열반이 중요하다. 끝없는 육체적 고통 속에 살아야 한다면, 무한한 수명인들 누가 원할까?

맛은 음식에 앞서 있는 게 아니라
맛볼 때 비로소 생기는 연기현상
중생도 부처도 연기체임 알아야


병원이 중요한 이유이다. 과거와 미래가 아닌 오늘을 사는 중생에겐, 당면한 고통의 해결이 중요하다. 과거와 미래의 낙(樂)은 오늘의 고(苦)에 소용이 없다. 이미 깨달음을 얻었어도 소용이 없고, 미래세에 깨달음을 얻을 것이라고 마정수기를 받았어도 소용이 없다. 이때 모르핀 등 진통제보다 더 고마운 것은 없다.


질병은 개인이 아무리 조심해도 찾아온다. 부처님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육신을 업신(業身)이라고 한다.

하지만 모든 고(苦)를 꼭 자기 업(業, 카르마)으로만 받는 것은 아니다. 타인의 자유의지로도 받는다. 인욕선인이 가리왕에게 당한 사지절단형은 중생들이 당하는 억울한 일들을 대표한다.

육체적 고통은 동물들도 당하지만 사람만 당하는 고통이 있다. 정신적인 고통이다. 그중에서도 인식론적인 고통이 가장 심각하다. 인식론적인 문제를 지닌 사람이 늘면 그중에서 거대한 망상을 지닌 지도자가 탄생하고 다른 사람들을 한꺼번에 지옥으로 인도한다.

부처도 육체적 고통을 당하지만 이 세상에 머무는 이유는 중생을 위해서이다. 늙고 병든 낡고 망가진 몸을 이끌고 마지막 숨을 몰아쉴 곳을 찾아가는 길에서, 부처가 아난에게 ‘여래는 일 겁을 더 살 수 있다’고 한 것은, 중생을 위한 자비심이다.

더 살면 더 살수록 육체적 고통도 더 많아지겠지만, 중생의 고통경감을 위해 더 산다. 보리수 아래서 정각을 이루었을 때 결심을 했다. 세상에 법을 설하는 것이 혹시 쓸데없이 심신을 괴롭히는 일이 아닐까 고민도 했지만, 다만 몇 사람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구제하기로 결심을 했다.

그런데 중생은 없다. 우리 마음의 분별일 뿐이다. 인식 이전에 미리 존재하는 게 아니다. 맛이나 재미는 음식이나 영화에 앞서 미리 있는 게 아니다. 맛보고 볼 때 비로소 생기는 연기현상(緣起現象)이다. 즉, 감각작용과 인식작용이다. 그래서 중생은 중생이 아니고 일체제상(一切諸相)도 제상(諸相)이 아니다. 다만 이름이 중생이고 상(相)일 뿐이다. ‘그런 실체가 우리 인식과 분리되어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러다간 큰일 난다. 최고의 자유를 얻지 못한다. 그러면 중생들에게도 최고의 자유를 줄 수 없다. 중생은 연기체(緣起體)이지 상주불변(常住不變)하는 실체가 아니다. 부처도 연기체이지 실체가 아니다. 이렇게 알아야 진정한 보살이다.

“내가 중생도 부처도 없다 하니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여래는 진실·사실·진리를 말하는 자이지, 미친 소리나 두말하는 자가 아니다.” 그 이유는 이렇다.

깨달음이 있지만 실체가 없으므로 무실무허(無實無虛)다. 보살이 물질적·정신적 현상을 실체로 알고 보시하면, 즉 시여자(施輿者)와 수혜자와 보시물이 실체로서 존재한다는 생각으로 보시하면, 어두운 방에 들어간 것처럼 실상을 보지 못한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보시하면, (선천적 소경이) 눈을 얻어 밝은 빛 아래서 갖가지 모양을 보는 것처럼, (반야지혜의 눈으로, 무명의 정신세계에 비치는 인식의 빛 아래서) 실상을 낱낱이 다 보리라.

강병균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
bgkang@postech.ac.kr
 


[1411호 / 2017년 10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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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교수 bgkang@post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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