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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흐르는 島

기자명 임연숙

삶은 흐르는 물처럼 흘러가는 것

▲ 박은영 作 ‘흐르는 島3’, 수묵채색, 80.5×117cm, 2015년.

나이는 ‘만’으로 하고, 해가 바뀌는 건 ‘설’이 지나야 한다고 말하는 요즘이다. 1월은 작년도 올해도 아닌 중간에 위치하며 무언가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달, 한껏 몸을 움츠렸다가 펼 준비를 하는 달로 여기고 마음의 평화를 찾고 싶다.

물·먹이 닥종이에 스미는 모습
생각과 물질이 하나 되는 과정
사유의 결과물 그림에 담아내

‘흐르는 島’라는 제목으로 최근 작업을 하고 있는 박은영 작가와의 인연은 1998년 ‘화화 畵畵’라는 한국화 전시를 통해서다. 이 전시는 당시에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한국화 양식과 내용면에서 동시대성을 담은 젊은 한국화작가를 소개했다는 의미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었다. 전시 참여 작가 중 한명인 박은영 작가는 수묵화라는 매체로 작업을 하면서도 젊은 여성 작가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다는 점과 수묵으로 산수화나 문인화가 아닌 동시대의 풍경과 현실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수묵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게 했다. 작가는 수묵화의 다양한 가능성을 영상과 애니메이션이라는 방식으로 실험했다.

이후 KBS TV동화를 통해 따듯한 이야기들을 수묵으로 전하는 작업과 2000년대에 들어서는 단편 애니메이션 작업을 제작하고 발표하더니 2009년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에서는 ‘토굴속의 아이’ 영상으로 파크랜드상을 받기도 했다. 수묵화를 일상으로 끌어내리는 작업들은 전통산수화가 이상세계를 추구하여 지나치게 현실과, 특히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멀게만 느껴졌던 것을 매체의 하나로 접근이 그리 어려운 분야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2000년대 이후 작가는 작품의 다양한 시도뿐 아니라 정착되지 않은 항상 무엇을 찾아 떠나는 듯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4~15년 제주 레지던시 작가로 머물면서 수묵 애니메이션 작업과 함께 그동안 좀 멀리했던 평면작업들을 다시 시작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흐르는 島’로 이어지는 작품 시리즈는 20년 전 보다 한층 깊어진 느낌이다. 제주에 체류하면서 작가는 바다를 관조하고 자신의 신체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넘어 이를 자연의 풍경과 오버랩시키면서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이고 삶 역시 흐르는 물처럼 흘러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물과 물결은 90년대에 이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생각과 내면을 잇는 상징이며, 중요한 화두다.

작업 노트를 살펴보니 초기부터 작가는 섬과 물과 자신에게 깊은 관심이 있었다. 역시 거기에는 물결이 보여주는 사색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수묵이라는 재료는 그것들을 표현해내기에 딱 맞는 재료가 아닌가 싶다. 작가는 물과 먹이 만나 닥종이 속으로 천천히 스며드는 과정을 바라보는 시간이 사유의 시간이며 작품과 대상을 바라보고 사유하는 동안 생각과 물질이 하나 되는 즉, 체화되는 경험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 사유의 과정이 깊어질 때, 붓을 든다고도 한다. 말하자면 사유가 깊어져서 흘러넘칠 때 자연스럽게 그것이 그림으로 표현된다는 영감을 안으로부터 끌어 올린다는 의미일 것이다.

최근 박은영 작가는 “한동안 다른 작업에 몰두했던 시간의 우회만큼 더욱 그리워하는 지점에 다시 되돌아와 서 있다”는 말로 다시 그림으로 돌아와 천천히 자신의 내면 이야기들을 풀어낼 것을 예고했다. 현재는 미국 시애틀에 정착하여 작업초기의 초심으로 돌아와 물, 먹, 닥종이의 깊은 맛을 되찾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여러 면에서 나에게 회상과 울림을 준다.

임연숙 세종문화회관 전시디자인 팀장 curator@sejongpac.or.kr
 


[1424호 / 2018년 1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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