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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명상의 의미

요가·불교 ‘선정’과 기독교 ‘묵상’ 의미 혼재

일반적으로 ‘명상(冥想, Meditation)’이란 ‘마음을 가라앉혀 신에게 기도하는 것’을 비롯하여, ‘어느 한 대상에 마음을 집중시키는 것’이나 ‘마음을 가라앉혀 무심하게 되는 것’ 등 종교적·철학적 전통의 차이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사실 ‘명상(冥想)’이란 말은 영어 ‘meditation’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용어이다. 이는 일본에서 영어 ‘meditation’을 주로 ‘명상(冥想)’으로 번역한 것을 따른 것이다.

‘meditation’ 일본서 명상 번역
과거와 현재 구분은 의미 없어
동서양 관계없이 폭 넓게 사용

어원적으로 ‘메디테이션(meditation)’은 ‘심사숙고‧묵상‧정신적·신체적 훈련’을 의미하는 라틴어 ‘meditatio’에서 유래한다. 라틴어 ‘메디타티오(meditatio)’는 점차 유럽의 기독교 문화권에서 신, 예수‧그리스도, 성모마리아 등을 마음 가운데 생생하게 떠올리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그것은 불교적인 의미로는 ‘내관’이나 ‘관상’에 해당된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불교의 ‘내관(內觀)’이나 ‘선정(禪定)’ 등의 용어와 인도의 ‘요가(yoga)’라는 말이 자주 영어 ‘meditation’으로 번역된다. 그런데 이것을 다시 역수입하는 과정에서 내관 등의 용어를 채용하지 않고 명상으로 번역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서구에서 명상이 도입되어 현대적으로 활용된 것은 1960대 이후의 일이다. 명상이 서구에 도입될 당시에는 정신분석학의 영향을 받은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동양전통의 명상수행 중 일어나는 깊은 선정체험을 일종의 정신분열증으로 오인하기도 했었다.

비록 명상이라는 용어는 서구적 전통에 유래하는 측면은 있지만, 수행적인 맥락에서 보면 명상의 가장 오랜 전통은 인도의 요가와 불교의 수행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요가의 정의는 ‘심작용의 지멸(citta-vṛtti-nirodha)’인데, 이는 명상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마음의 활동이나 작용을 제어하는 방법이나 목적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불교의 수행법은 이러한 요가 수행을 기반으로 더욱 체계적으로 발전된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태어난 이후로 죽는 날까지 한시도 쉬지 않고 활동을 계속한다. 잠을 자는 동안에도 꿈을 꾸는 등 심층의식에서 미세한 의식의 활동은 멈추는 일이 없다. 이러한 의식의 활동은 업(業, karma)과 긴밀한 관련을 가진다. 특히 업은 지식과 일상적 경험의 산물로서 의식의 내면, 즉 마음의 활동과 심적 작용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요가수행이나 불교명상은 의식의 내면에서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식과 경험의 산물인 업력을 깊은 삼매나 선정력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제어하고 소멸시키기 위해 행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파탄잘리의 8지칙이라는 고전요가의 수행체계 가운데 제7단계와 제8단계의 디야나(禪, dhyāna)나 사마디(三昧, samādhi)와 깊은 관련을 가진다.

특히 명상의 의미와 관련하여, 먼저 요가의 디야나는 ‘의식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시키거나 의식의 작용이 하나의 대상에 한결같이 집중된 상태’를 의미한다. 한편 사마디는 ‘대상만이 홀로 빛나고 의식 자체는 사라진 것 같이 된 상태’를 의미한다. 흔히 불교에서 사용하는 선정(禪定)이라는 말은 이러한 요가의 디야나와 사마디의 두 단계를 합하여 지칭하는 표현이다. 사실 불교의 입장에서는 요가를 사마타(止, samatha)적인 수행으로 평하는데, 불교의 명상은 이러한 요가의 사마타에 위빠사나(觀, vipassanā)적인 수행방식을 더하여 지관겸수를 병행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결국 명상의 기본적 의미는 고전적인 해석과 현대적인 해석으로 구분하여 정리된다. 우선 고전적인 해석으로는 요가의 정의나 불교의 수행에서 유래된 것으로 요가의 수행단계를 나타내는 디야나와 사마디의 의미와 상통한다.

현대적인 해석으로는 라틴어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고요히 생각에 잠기는 것이나 고요히 생각을 가라앉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명상은 동‧서양의 전통적‧종교적 차이와는 관계없이 매우 폭넓게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김재권 동국대 연구교수 marineco43@hanmail.net     


[1424호 / 2018년 1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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