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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사익 버린 인상여

기사승인 2018.02.12  09:4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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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익만 고려해 처리하는 신하가 좋은 공직자다”

   
▲ 그림=근호

화씨의 구슬(和氏璧)은 중국 황제의 옥새로 사용된 유명한 보물이다. 전국 시대에 화씨벽은 조나라가 갖고 있었는데, 진나라 소왕이 그것을 탐냈다. 소왕은 조나라 혜문왕에게 성 열다섯 개와 구슬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혜문왕은 구슬을 주자니 성을 받을 수 있을지 의심스럽고 안 주자니 이를 빌미로 진나라가 공격해 오지 않을까 염려되었다.

조나라 인상여, 번뜩인 재치로
진나라로부터 위기 벗어나게 해

직위 오르자 시샘 잇따랐지만
지혜로 백전노장과 우정 맺어

공인은 사익 개입시켜선 안돼
사사로운 감정 뒤로 미루어야
공공의 마음 회복할 수 있어


혜문왕은 인상여(藺相如)로 하여금 구슬을 갖고 진나라에 가서 담판 짓게 했다. 인상여는 진나라에 도착하여 진왕에게 구슬을 받들어 올렸지만 곧 진왕이 성을 줄 의사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핑계를 대어 구슬을 돌려받은 다음 기둥에 몸을 기대고 서서 눈을 부릅뜨고 좌우를 노려보며 진왕을 꾸짖었다.

“대왕께서는 구슬을 궁녀들에게 돌려 보임으로써 신을 희롱하면서 성을 주겠다는 뜻은 보이지 않으시므로 제가 감히 구슬을 돌려받았습니다. 만일 대왕께서 이 구슬을 다시 빼앗고자 하신다면 신은 구슬과 제 머리를 기둥에 부딪쳐 깨뜨릴 것입니다.”

말을 마치자 인상여는 곧 기둥을 향해 구슬을 던지려 했다. 놀란 진왕은 인상여를 진정시킨 다음 담당 관리를 불러 지도를 손가락질하면서 “여기서부터 성 열다섯 개를 조나라에 주라.”고 말했다. 인상여가 다시 말했다.

“이 구슬을 보낼 때 저희 임금께서 닷새 동안 재계하셨으니 대왕께서도 닷새 동안 재계하신 다음 구슬을 받으셔야 할 것입니다.”

이런 핑계를 대어 구슬을 보존하여 숙소에 돌아온 인상여는 화씨벽을 비밀리에 본국으로 돌려보낸 다음 빈손으로 진왕에게 나아가 말했다.

“진나라는 강하고 조나라는 약합니다. 만일 대왕께서 먼저 성을 주신 다음 사신을 조나라에 보내시면 조나라가 구슬을 주지 않을 까닭이 없습니다. 그러니 정말로 구슬을 원하신다면 성을 먼저 주십시오.”

이렇게 하여 인상여는 구슬도 빼앗기지 않고 목숨도 보전하여 조나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조왕은 매우 기뻐하며 인상여를 상대부에 임명했고, 화씨벽과 성을 바꾸는 문제는 유야무야되었다. 그런지 얼마 안 지나 인상여는 진왕과 조왕이 합석한 모임에서 조왕의 위신을 세우는 공을 세웠다. 조왕은 인상여의 직위를 또다시 높여 그를 상경으로 삼았다.

당시 조나라에서는 중국 천하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백전노장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염파(廉頗)이다. 염파는 비천한 출신인 인상여가 순식간에 자신보다 높은 지위에 오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앙앙불락하며 대신들에게 말했다.

“나는 조나라의 장수로서 여러 차례 성을 공격하고 들판에서 싸워 큰 공을 세웠다. 그런데 저 인상여는 한갓 입과 혀만 놀렸을 뿐인데도 지위가 나보다 높다. 나는 그의 아래에 있는 것을 참을 수 없다. 인상여를 만나는 날 나는 그를 크게 욕보일 것이다.”

이 말이 인상여에게 전해졌다. 이후, 인상여는 조회가 있을 때마다 병을 핑계 대고 나오지 않았고, 길을 가다가 염파와 마주치면 황급히 수레를 몰아 샛길로 피했다. 인상여의 수하들이 주인에게 항의했다.

“저희가 가족과 친척을 버리고 고향을 떠나 주인님을 모시는 까닭은 주인님의 드높은 의기를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주인께서는 염 장군을 두려워하여 그를 보면 도망치며 숨습니다. 이것은 범부로서도 부끄러운 일이거늘 하물며 지위가 높은 사람이겠습니까? 저희들은 주인님을 떠나고자 합니다.”

인상여가 물었다.

“너희는 염 장군과 진왕 가운데 어느 편이 위세가 크다고 생각하느냐?”
“염 장군이 진왕만 못합니다.”
“나는 그렇듯 세력이 큰 진왕을 그의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꾸짖어 부끄럽게 했다. 그런 내가 어찌 염 장군을 두려워하겠느냐? 내가 염 장군을 피하는 데는 까닭이 있다. 지금의 사세를 보면 진나라는 강하고 조나라는 약하다. 그런데도 진나라가 조나라를 침공해오지 못하는 것은 조나라에 염 장군과 내가 있기 때문이다. 염 장군과 나는 조나라를 지키는 두 범이다. 두 범이 싸운다면 하나가 죽거나 둘이 다치게 될 것이다. 내가 염 장군을 피하는 것은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명예를 뒤로 미루기 때문이다.”

이 말이 염파에게 전해졌다. 염파는 부끄러움을 느껴 옷을 벗어 어깨를 드러낸 다음 가시 회초리를 짊어지고 인상여를 찾아가 대문 밖에서 사죄했다.

“비천한 사람이 생각이 깊지 못했습니다.”

인상여는 머리가 허연 백전노장을 안으로 들여 위로했고,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은 목이 잘릴 때까지 변하지 않는 우정(刎頸之交: 문경지교)을 맺었다.

모든 사람은 기본적으로 사인(私人)이다. 사인들이 모여 국가를 조직하고 국가는 공공의 이익을 다루므로 국가의 일을 맡은 사람을 공인(公人)이라 한다. 공인은 공무에 종사할 때는 공인이 되었다가 일을 마치는 순간 사인으로 돌아온다. 공인은 공무를 다룰 때 사익을 개입시켜서는 안 된다. 여기서 좋은 공직자와 나쁜 공직자가 갈린다. 공무를 사익과 관련지어 처리하는 사람은 나쁜 공직자이고, 공익만을 고려하여 처리하는 사람이 좋은 공직자임은 물론이다.

고대의 군주들은 공을 세운 신하에게 높은 직위를 내리곤 했다. 직위를 받은 신하는 자신에게 주어진 직위를 공공의 관점과 사사로운 관점 중 하나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직위가 국가와 민중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는 책무로 받아들인다면 전자일 것이고, 개인에게 주어진 영광스러운 보상이라고 받아들인다면 후자일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직위를 인상여는 전자로, 염파는 후자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염파에게는 잘못을 드러내놓고 고칠 줄 아는 곧은 마음이 있었고, 그 마음이 있었기에 사사로운 감정을 끊고 공공한 마음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인상여의 넓은 식견과 또 염파의 곧은 마음이 만나 멋진 우정을 의미하는 고사성어 하나가 생겨났다. 불교 사상의 중심을 이루는 공(空)은 공(公)의 가장 넓은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불교를 신행하는 이는 염파의 곧은 마음을 기초삼아야 하고, 인상여의 공공을 우선하는 정신을 배워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 오온이 비었다는 것은 ‘나’가 비었다는 것이다. 불교인은 이 경지를 향해 나아간다. 이 경지에 이른 이에게는 공무를 마친 다음에 돌아가게 되는 사사로움(나) 자체가 없다.

김정빈 소설가·목포과학대교수 jeongbin22@hanmail.net
 

[1428호 / 2018년 2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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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빈 교수 jeongbin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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