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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분별하는 성질

언어는 이율배반적 속성 지닌다

말로 하는 언어만 아니라
분별과 생각이 모두 언어
언어 떠나야 최고의 경지
구별하되 원성실성 돼야

해심심의밀의보살은 부처님의 경지는 상대적 대립으로 이루어진 변계소집의 언어로는 나타낼 수 없고 조금이라도 설한 바가 있다면 이는 모두 진실이 아니라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부처님 설법은 쓸모없다는 말인가? 해심심의밀의보살의 해명을 들어보자.

“선남자여 그렇다고 본사께서 일이 없어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모든 성자의 성스러운 지혜와 견해는 명칭과 언어를 벗어난 것으로 중생들에게도 이와 같은 이치를 깨닫게 하기 위해 임시로 명칭과 언어를 세우신 것입니다. 위없는 깨달음을 드러냅니다.”

불교의 성자는 부처님과 권현보살들이다. 교리상 소승의 수다원·사다함·아나함을 포함한 성문아라한과 연각아라한들도 성자에 포함은 되지만 대승에서는 대열반의 자리인 원성실성 즉 불성을 철저히 요달하지 못했으므로 성자라 부르지 않는다.

‘해심밀경’을 소의로 하는 유식의 가르침에서 논하는 언어는 곧 분별을 포함한다. 우리가 입으로 내뱉는 언어만이 언어가 아니라 속으로 분별하고 생각하는 것들이 모두 언어인 것이다. 대승은 이러한 언어화된 중생의 일체 분별을 번뇌로 정의한다. 변계소집은 곧 번뇌인 것이다. 탐진치만을 번뇌로 보는 소승과는 다르다.

그렇다고 부처님의 언어가 번뇌에 의해 나온다는 뜻은 아니다. 부처님 말씀을 변계소집이라 한 것은 부처님께서 중생들의 변계소집의 언어를 사용하셨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자칫 이와 같은 논리가 모순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부처님은 중생들이 변계소집을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변계소집의 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언어는 이토록 이율배반적 속성을 띤다.

‘대승기신론’에서는 원성실성을 진여(眞如)라는 용어로 부르고 이를 이언진여(離言眞如)와 의언진여(依言眞如)로 나눈다. 이언진여는 언어로 나타낼 수 없는 진여이고, 의언진여는 이언진여를 언어로 나타낸 진여이다. 진여는 참되고 한결같다는 뜻이다.

“다만 모든 성자는 이처럼 언어를 떠난 법성을 중생들에게 이루도록 하기 위해 임시적으로 명칭과 모습을 세우고 유위니 무위니 하는 것입니다.”

‘해심밀경’에서 말하는 불법의 최고 경지는 언어를 떠난 법성이다. 법성은 모든 존재에 깃든 공통된 성품이다. 모든 존재는 연기·무아·무자성·공을 법성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와 같은 법성들 역시 분별의 주체인 마음이 없다면 성립하지 못한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마음 하나에 의지해 존재의 유무가 정해진다. 마음이 없는데 어찌 있음과 없음을 논하고, 불법과 세간법을 논하겠는가? 연기니 공이니 하는 진리도 마음 밖의 일이 아니다.

유식에서는 우리 중생의 마음은 두 면이 있다고 설한다. 하나는 분별하는 성질이고 또 하나는 분별이 없는 성질이다. 이 가운데 분별하는 성질은 중생들의 변계소집성이고 분별을 여읜 성질을 원성실성이라 한다. 이에 따라 유식에서의 최고의 깨달음은 연기·무아·공보다 수승한 무분별의 원성실성이다. 중요한 것은 무분별에 대한 이해이다. 일반인들이나 초학 불자들은 분별이 없다거나 분별이 끊어졌다는 말을 들으면 아무 생각도 판단도 하지 않는 백지상태의 마음을 떠올린다. 경전 용어로는 이 같은 상태를 회매공(晦昧空)이라고 하는데 이는 분별이 끊어진 원성실성의 마음과는 다르다.

경에서 가르치는 분별 없음은 온갖 인식 활동을 전개하면서도 인식 활동 그대로가 분별이 없음이다. 다시 말해 경전에서 가르치는 분별 없음은 분별과 대립하는 분별 없음이 아니라 분별 그대로 두고 분별 없음이 되는 것이다. 중생들은 분별로만 사물을 판단한다. 이에 반해 마음을 깨달은 성인들은 분별을 여읜 원성실성에서 분별을 일으킨다. 따라서 경전에서 분별을 여의었다는 말은 세상사에 대한 구별과 판단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분별을 일으키되 그 분별이 분별 없는 원성실성으로 전환되어 일으키라는 뜻이다.

불교 속에 들어오면 분별을 버리라는 소리를 자주 듣게 된다. 이를 일으키는 분별과 원성실성의 분별없음이 둘이 아닌 줄 깨달아야 분별은 더 이상 번뇌가 되지 않는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722호 / 2024년 3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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