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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일 불교문화사업단 차장-하

인연차 공덕으로 현재를 일구다

 
1998년 말, 스님들과의 공동체생활, 신도회 및 사찰의 재건, 그리고 산사태와 다시 시작된 불사까지 굵직굵직한 기억들을 뒤로 한 채 정든 보광사를 떠나기로 했다. 불교계 내부에 종권을 둘러싸고 발생한 폭력사태를 불자의 한 사람으로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박광서, 임완숙, 임동주 선생 등 뜻을 함께하는 분들과 ‘불교바로세우기범불교재가연대’를 조직했고 초대 사무국장 소임까지 맡았다.

시민강좌·서울노인 개관 보람
다양한 경험들 불교계에 회향

그러나 재가연대 사무국장으로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새로운 상황이 발생했다. 종단사태가 마무리돼 조계사를 수습해야 하는데 그 일을 맡아 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봉은사와 보광사에서 종무행정과 신도조직을 재편했던 경험이 꼭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고민 끝에 박광서 대표와 의견을 나누고 2달간 힘을 더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결정은 결국 조계사에 눌러앉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열린 조계사 시민과 함께하는 조계사’. 새로운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변화를 모색했다. 무엇보다 폭력으로 얼룩진 조계사의 이미지를 쇄신하고 흩어졌던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아야 했다. 매주 토요일 신영복, 김근태, 노무현, 유시민 등 사회 저명인사를 초청해 ‘열린시민강연회’를 개최했다. 떠나간 불자들의 발길을 되돌리는 것은 물론 조계사를 서울시민의 문화공간으로 거듭나도록 만들려는 방편이었다. 조계사의 변화는 입소문을 타고 퍼져나갔고, 어느새 조계사에는 다시 불자와 시민들의 발길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조계사 종무원으로 근무하며 경험한 가장 큰 일은 서울노인복지센터의 개관이다. 서울시가 탑골공원 정비를 위해 대규모 노인복지관 건립을 추진하자 종교계를 비롯한 수많은 단체가 복지관 수탁에 뛰어들었다. 치열한 경쟁 끝에 조계사가 서울노인복지센터 운영을 맡게 됐다. 불과 한 달여의 기간에 텅 빈 건물에 복지관 운영에 필요한 기자재를 채워야 했고, 운영계획을 세워야 했다. 책임을 맡아 밤을 새워가며 개관 준비에 매달렸다. 첫 문을 열던 날, 끝없이 이어지는 어르신들의 행렬과 수천명의 점심을 준비했던 일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 추억이다. 조계종복지재단 실무자들과 복지시설 관계자들의 헌신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 절집 일을 한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큰일을 마치고 나니 보람과 함께 무기력함이 몰려왔다. 커다란 벽이 앞을 가로막은 듯 답답함이 느껴졌다. 무언가 새로운 일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조계사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마흔을 앞둔 나이에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조계사나 나를 위해서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일은 사람과의 인연이 얼마나 지중한 것인지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됐다. 조계사 종무실장 소임을 그만둔 지 얼마 되지 않아 교계 지인의 제안으로 대통령자문위원회인 제2건국위원회에서 기획팀장으로 근무하게 된 것이다. 2년의 계약기간이 끝난 뒤에는 또 다른 지인의 추천으로 조계종 총무차장으로 불교계에 복귀했다.

이후 기획차장, 포교차장, 불교문화재연구소 부소장 등을 거쳐 지금은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사무차장으로 그동안 쌓은 경험들을 불교발전을 위해 회향하고 있다. 1994년 봉은사 종무원으로 시작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만의 힘으로 이뤄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불교’라는 공동체 안에서 ‘원력’을 세우고 많은 분들의 공덕으로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라 믿고 있다.

매년 그렇듯 올 부처님오신날 오후 보광사를 찾았다. 그리고 어려운 시절을 함께했던 많은 신도님을 만났다. 90세가 되신 파주 노보살님은 내 손을 덥석 잡고는 반가움에 눈물까지 보이셨다. 법회가 끝나면, 봉사를 마치면 승합차로 집 앞까지 모셔다드렸던 분들이었다. 따지고 보면 성인이 된 후 장소와 역할만 바뀌었을 뿐 종무원으로 살아온 셈이다. 나의 종무원 생활을 그렇게 절에서 소중한 인연들과 울고 웃으며 마무리하고 싶다.

정리=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1356호 / 2016년 8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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