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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안보위기 대화로 풀어야

기자명 이중남

국제정치는 강대국들이 두는 장기요, 약소국은 장기판의 말이라는 얘기가 있다. 지정학적 위치에 따라 정도의 차는 있겠지만, 국제정치사에서 힘의 논리가 적나라하게 실현된 예가 의외로 많다. 그리고 요즘에는 그 얘기가 정말 남 얘기로 들리지 않는다.

미국은 북한이 인민군 창건일인 4월25일이나 그 인접한 어느 시점에 여섯 번째 핵 실험이나 탄도탄 시험을 감행할 가능성에 대비해 ‘떠다니는 군사기지’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를 한반도로 전진 배치하고 있다. 북한의 탄도탄과 핵 기술이 미국 본토를 현실적으로 위협할 단계에 이르렀다면서 북한의 문제가 최우선 안보 과제가 되었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발표는 단순한 호들갑으로 치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눈에 띄는 것은 4월초 열린 ‘G2’ 정상 회담 이후 중국의 태도 변화다. 관영 ‘환구시보’는 미국의 우려대로 조만간 북한이 추가로 도발한다면, 핵시설에 대한 외과 수술식 공격을 묵인할 용의가 있음을 시사했다. 두 강대국 간 모종의 합의가 있었음을 추정케 하는 대목이다.

다른 한편 사드를 조기에 배치·가동하려는 미국의 움직임은 필자의 깜냥으로는 해석이 어렵다. 다만 전략적 균형을 깨는 것이니, 중국과 러시아가 이를 최종 용인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일종의 위장술로써 대선 국면에 친미 성향이 강한 후보들에게 유리한 결과를 조성하는, 일종의 내정개입 시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혹은 사드를 ‘알 박기’해서 차기 정부에 협상 카드로 쓰려는 꼼수일 가능성도 있다.

이런 현안들은 하나같이 우리 국민과 국토의 안위에 직결되는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그저 손을 놓고 있다. 대통령이 공석이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가 파면되기 전에 미국의 사드 배치 요청을 수용함으로써 중국이 우리를 건너뛰어 미국과 직통하도록 하는 길을 터줬기 때문이다. 그보다 반년 앞서 개성공단을 전격 폐쇄함으로써 북한과 직접 소통할 만한 창구도 스스로 끊어버린 상태니, 이 상황에서 권한대행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이 구한말로 되돌아갔다는 자조가 들린다. 하지만 유례를 찾으러 수고롭게 100년씩 거슬러 갈 필요조차 없다. 지난 1994년 북핵 위기 당시에도 우리는 북미 간 교섭 테이블에 앉아본 적도 없이, ‘제네바 합의’에 따라 미국 측이 부담하기로 한 북한의 경수로 건설 및 관리 비용의 8할을 뒤집어쓴 전력이 있다. 우리가 가장 큰 피해 당사자라는 점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개성공단 폐쇄로 멀쩡한 재산을 날린 것도 우리요, 애꿎은 사드 보복에 피해를 받는 것도 우리요, 사드 배치를 막아보려다 다친 사람들도 우리네다.

그래도 지금의 여건은 1994년 당시와 견주어 크게 다른 점이 있다. 분단 이래 지속된 극한 대치로 상호간 교류의 경험이 사실상 전무했던 당시와 달리, 남북은 이제 역사적인 정상 회담 두 번을 포함해 당국과 민간이 십수년 간 교류해 온 경험을 가지고 있다. 두 강대국이 대치하는 국면에서도, 의지만 있다면 그와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민족 간 주체적인 교섭을 시도해 볼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다른 한편으로 다자회담의 시도도 가능하다.

이런 상황에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안보를 더욱 불안하게 한다며 강경책을 쓸 때라는 주장도 있다. 그렇게 따지면 남북 분단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위기 아닌 때가 언제 있었는가. 우리가 오늘과 같은 속수무책의 상황에 빠지게 된 것이야말로 바로 그런 강경론에 따른 정책결정을 누적해 온 결과가 아닌가.

간디는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길이다”는 명언을 남겼다. 다소 초월적인 통찰이어서 현실적인 옵션이 아니라고 느껴질지 모르지만, 평화를 원한다면 실로 다른 수가 없다. 오늘의 안보위기 해법, 대화로써 찾아야 한다.

이중남 마하이주민지원단체협의회 운영위원 dogak@daum.net
 


[1390호 / 2017년 5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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