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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불가사의한 삶의 흐름

기사승인 2017.05.23  13:3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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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체는 무아연기로 고정불변의 실체 없어

삶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주재자가 없는 우주에서 시절인연은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단세포 아메바가 자신에게 다세포의 삶이 올지 어찌 알았겠으며, 다세포 생물이 자신에게 물고기의 삶이, 물고기가 자신에게 양서류의 삶이, 양서류가 자신에게 파충류의 삶이, 파충류가 자신에게 영장류의 삶이, 영장류가 자신에게 유인원의 삶이, 유인원이 자신에게 인류의 삶이 올지 어찌 알았겠는가?

삶의 불확실성 없애려고
고정된 교리로 마음 가둬
이런 고정된 관념 부수어
자유 얻게 하는 게 금강경


다음 단계의 삶은 전 단계에게는 사실상 불연속이다. 연속이지만 불연속이다. 몸과 마음에 일어나는 변화가 너무 급격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이, 즉 몸과 마음이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침팬지·고릴라·오랑우탄 등 영장류가 인간의 삶과 몸과 마음을 거의 이해하지 못하듯이, 지금의 인간도 먼 미래의 인간의 삶과 몸과 마음을 거의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플라톤 시대, 노자 시대에, 누가, 2500년 후에 누구나 유라시아 대륙에서 대서양과 태평양을 넘어 아메리카 대륙의 사람과 얼굴을 ‘실시간으로’ 보며 대화를 할 수 있을지, 상상이나 했는가? 사람이 수시간 만에, 아폴로 신처럼 신선처럼, 대서양과 태평양과 수미산을 떼로 넘어갈 수 있게 될 줄 누가 알았는가? 성령에 의한 수태처럼 육체적 접촉이 없이 처녀를 임신시키게 될 줄 누가 알았던가? 하늘나라의 신들처럼 (예를 들어 화락천과 타화자재천처럼) 성세포의 도움이 없이, 즉 성행위 없이 서로 동의의 눈빛 교환만으로 또는 마음만으로 (유전자 혼합과 체세포 복제를 통해서) 애를 만들 수 있게 될 줄 누가 알았는가? 고대인들의 눈에 비친 현대인은 모두 신이다. 그들이 명상 중에 위에서 거론한 것들을 보았다면 틀림없이 경악했을 것이다. 명상에서 깨어나 식은땀을 흘렸을 것이다. 혹시 헛것을 본 것은 아닐까 두려웠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아는 것만으로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어느 한 시점에서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법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국부적으로는 안다. 그래서 비법이고 비비법이다. 모든 게 연기현상이다. 일체의 현상 뒤에는 고정불변한 영원한 주체가 없다. 일체가 연기라는 대의는 알지만, 시공에 따라 생멸하며 천변만화하는 디테일은 죄다 알 길이 없다. 일체 지혜로운 성인은 범인이 모르는 이 사실을, 즉 일체는 무아연기(無我緣起)라는 걸 깨달았다. 심지어 그렇게 깨달은 존재까지도 연기현상이다. 그래서 무유정법 명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고, 역무유정법 여래가설이다. 일체현성 개이무위법 이유차별이다.

삶은 예기치 못할 일들로 가득하다. 우주를 움직이는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법칙들이 있지만, 어김이 없다는 점에서 법칙이고 따르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강제적이지만, 마음의 세계엔 법칙들이 있어도 자유의지라는 돌발변수가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자유의지가 있다. 삶의 길 대신 죽음의 길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세상의 고통과 비극은 자유의지로 인해서 일어난다. 사람들은 고를 싫어하고 낙을 좋아하지만, 낙 역시 자유의지로 인하여 일어난다. 자유의지가 없으면 고도 없지만 낙도 없다. 역동적인 이 세상은 자유의지의 산물이다. 의식의 스크린 위에서 자유의지는 놀이터의 아이들처럼 신나게 뛰어논다. 꽃을 쳐다보는 소녀처럼 감정을 느낀다. 감정은, 대자(對自)와 사물과 타인의 즉자(卽自)를 녹여 벽이 없는 존재로 변용시킨다. 무지개를 보면 가슴이 뛰지만 동시에 그 비밀을 풀려한다. 하늘에 오색으로 둥글게 걸린 이유를 알아내려 한다.

예기치 못할 삶의 불확실성을 없애려고 고정된 교리를 만든다. 인간의 역사를 유한한 것으로 만들고 그 속에서의 삶을 뻔한 것으로 만들려 한다. 몸과 마음을 구속하는 규칙·규율을 만든다. 강낭콩·돼지고기·쇠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 옷은 수백 년 전 옷을 입어야 하고 현대문명의 이기를 쓰면 안 된다. 그럴 바에야 왜 갈대옷이나 크로마뇽인의 가죽옷을 입지 않을까? 특정한 틀에 마음을 가두어 놓는다. 그 틀이 생명과 우주의 비밀을 다 담고 있다고 큰소리치지만, 사실은 몹시 작고 좁은 틀이다. 지금까지의 마음이 가능한 모든 마음인 양 한다. 자기가 알고 있는 마음이 모든 마음인 양 한다.

이 모든 어리석음을 없애고 마음을 구속하는 고정관념을 부수어 무한한 자유를 얻게 하는 게 ‘금강경’의 지혜이다.

강병균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
bgkang@postech.ac.kr
 

[1392호 / 2017년 5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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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교수 bgkang@post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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