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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사리불과 좌선 ②

기자명 이제열

좌선하는 사리불 향해 대립 넘어설 것 설파

“(유마거사가 자신에게) 마음이 안에도 머물지 않고 밖에도 머물지 않는 것이 좌선이며, 어떠한 견해에도 흔들리지 않고 삼십칠조도품을 닦는 것이 좌선이며, 번뇌를 끊지 않고 열반에 드는 것이 좌선이니 이렇게 좌선하는 사람이라야 부처님께서 인가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말을 듣고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 사람을 찾아가 병을 물을 수 없습니다.”

행위로 수행을 삼는 것은
또 하나의 집착에 불과해
번뇌의 성품이 공하므로
그대로 열반임을 알아야

앞서 사리불의 좌선은 수행의 차원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을 마친 아라한의 경지에서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아라한들은 주로 하는 일이 좌선이다. 다른 일은 하지 않고 나무 아래나 숲 속에 앉아 삼매를 즐긴다. 몸을 번잡한 세상살이에 두면 삼매의 기쁨을 누릴 수 없기 때문에 인적이 드믄 곳에서 좌선을 한다.

유마거사는 이런 방식으로 좌선을 하고 있는 사리불을 향해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마음이 안에도 머물지 않는다는 것은 마음을 안·이·비·설·신·의 육근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밖에도 머물지 않는다는 것은 색·성·향·미·촉·법 육경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유마경’ 외에도 경전에 안, 밖, 중간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데 안이란 육근을 가리키고, 밖은 육경을 가리키며, 중간은 마음을 가리킨다.

참다운 좌선은 마음이 어디에도 집착이 없어야 한다고 유마거사는 말한다. 사리불로서는 자신이 증득하고 성취한 깨달음의 경지와 청정의 경지를 누리기 위해 좌선을 하고 있지만 유마거사는 이런 사리불의 태도는 부처님이 인정하는 좌선 방식이 아니라고 보았다. 부처님은 깨달음에도 안주 하지 않고 청정에도 안주하지 않는다. 깨달음과 청정은 좌선 안에서 확인되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이 그대로 깨달음이며 청정이다. 부처님의 좌선은 굳이 조용한 나무 밑에 앉지 않아도 한결 같이 행해진다. 앉고, 서고, 눕고, 다니고, 말하는 등의 일체 행위가 그대로 좌선이며 깨달음이며 청정이며 삼매이다.

다음으로 ‘어떠한 견해에도 흔들리지 않고 삼십칠조도품을 닦는 것이 좌선’이라는 것은 삼십칠조도품과 좌선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삼십칠조도품 자체가 좌선이라는 의미이다. 삼십칠조도품은 거룩한 열반에 이르는 37가지 방법들로 사념처, 사정근, 오근, 오력, 칠각지, 팔정도이다. 그런데 이러한 삼십칠조도품은 깨달음과 열반에 들기 위한 행위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삼십칠조도품은 깨달음과 열반 그 자체로써 사리불이 누리고 있는 좌선의 경지와 아무런 차별이 없다. 낱낱의 모든 품들과 실천 덕목들이 이미 깨달음과 열반을 머금고 있어 사리불이 누리는 좌선과 동일한 공덕을 가진다. 유마거사는 수행이라는 행위와 깨달음이라는 결과를 분리시키지 말 것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수행, 깨달음, 열반이 모두 실체가 없는 공이기 때문이다.

이어 ‘번뇌를 끊지 않고 열반에 든다’는 말에 대한 의미이다. 번뇌란 중생을 괴롭히는 원인이다. 만약에 중생에게 번뇌가 사라지면 괴로움은 발생하지 않는다. 열반이란 이러한 괴로움의 원인인 번뇌가 사라져 다시는 괴로움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유마거사는 이 같은 번뇌를 끊지 않고도 열반에 든다고 말한다. 이는 곧 번뇌의 성품이 공한 까닭이다. 중생을 괴롭히는 번뇌는 미혹의 차원에서 보면 실체가 있어 끊어야 할 대상이지만 지혜의 차원에서 보면 실체가 없어 끊어야 할 대상이 아니다. 번뇌의 성품이 공하여 그대로 열반의 모습인 것이다. 대승에 있어 번뇌를 끊는다는 것은 번뇌를 번뇌로만 여기고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다. 번뇌가 공하여 그 본성이 열반임을 깨닫는 것이 대승에서 바라보는 번뇌의 모습이다. 유마거사는 대립된 시각을 지니고 좌선을 하는 사리불을 향하여 대립의 초월을 설파하고 진정한 좌선의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를 밝히고 있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396호 / 2017년 6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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